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4> 난치병 가족의 고통
태어날 때부터 신경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오고 혹 안에는 물이 차는 희귀난치병(요추부 척수수막류)이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아기의 부모는 무조건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수술이 성공해도 후유증이 클 것이라고 말하자, 부부는 “아기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걸음을 똑바로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도, “뒤뚱거리며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살려 보자”는 말 대신 수술 후유증부터 설명해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기는 이후 다섯 달 동안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안마사로 일하는 이들은 아기 치료비 대기가 벅차 보였다.
1차 수술 땐 사회복지재단 등에서 수술비를 일부 지원받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2·3차 수술할 때는 독지가를 구할 수 없어 부부가 전액을 부담해야 했다.
심장병이나 백혈병 환자의 경우 도와주는 단체들이 있으나, 이처럼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이들은 좀처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6개월 만에 아기는 끝내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치료비 대기 힘든 상황에서 아기가 빨리 죽어 효도했다고 해야 되나요?” 부부는 그날
진료실에서 서럽게 울었다.
소아신경외과에서 아이들을 진료한 30년 동안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는 환자들은 희귀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이다.
희귀병 환자들은 왜 이리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지…. 그래서 의사는 치료뿐만 아니라 치료비까지 신경을 써주어야 할 때가 많다.
희귀난치병은 치료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고, 병명조차 낯설어 후원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도 희귀난치병(125종) 환자 2만여명에게는 병원비(보험 적용분)를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가 많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허리뼈에 구멍이 나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에 걸린 아기를 데려왔다가 결국 이혼한 부부도 본 적이 있다.
아기를 돌보기 위해 한 명은 생업을 포기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돈 문제로 부부 사이가 멀어진 것이다.
집안에 희귀병에 걸린 아이가 하나 있으면 과중한 치료비에 가정이 파괴되기 일쑤다.
20년 전 캐나다 토론토의 병원에 연수 갔을 때 희귀난치병 아동들의 ‘요양시설’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곳은 희귀병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 전액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었다.
캐나다가 이미 20년 전부터 한 일을 우린 아직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방에서 찾아온 희귀병 환자들 중에는 “수술비용이 많이 들고 수술해도 계속 장애를 갖고 살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치료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내 마음도 답답하고 막막해진다.
우리는 언제 희귀난치병 환자들에게 안심하고 치료 받으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