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에 대한 관심, 사실 그리 없다.
마라톤에 대한 관심, 이봉주가 출전하지 않는 이상 역시나 그리 관심 없다.
자폐아 마라토너의 이야기를 그린 <말아톤>은 때문에 상당한 시선을 끌기에는 여러 모로 난관이 존재했던 영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러한 통념을 참으로 대견스럽게도 당 영화,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었더랬다.
그렇다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라는 신화적 서사의 가르침을 설파함으로써 객석을
감동의 도가니로 적시는 스포츠 휴먼드라마로 오해하시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또 그 같은 스토리와 설정을 완전 뒤엎으며 새로운 길을 열어제낀 대단한 작품이라 찬사를 날리는 것도 오바시다.
당 영화 <말아톤>은, 정신지체아를 다룬 숱한 영화의 관습과 공식을 크게 비껴가지 않고 그 범주 안에 자리하고 있되,
작심하고 어거지로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장편영화에 입봉하는 신인다운 호기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는 않는 균형미와 절제를 앞세우며
별다른 극적 구성없이도 이야기를 잘 꾸려가는 꼼꼼하고 안정된 연출력을 장윤철 감독은 선보인다.
그러니까 결국,
기본에 충실했다는 거다. 늘상 거론되지만 늘상 문제가 되는 그 놈의 기본을 과도한 작가적 야심과 상업적
욕심 속에서 망각하는 패착에서 영화는 벗어나 있다.
건장한 스무 살 청년이지만 다섯 살 아이의 표정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자폐아 초원(조승우)과 그의 엄마 경숙(김미숙) 그리고
초원을 재능과 의지를 뒤늦게 발견하고 그의 삶 한 가운데로 뛰어든 마라톤 코치 선생 정욱(이기영) 등 세 사람을 축으로
흘러가는 <말아톤>은, 남들과 포개지지 않는 일상으로 드리워진 초원의 나날을 주변 인물과 함께 보여줌과 동시에 타인과의
소통에 관한 의미를 비중 있게 다룬다.
세인들이 정해놓은 소통 방식에 조응하지 못하고 세상과 불화하는 초원뿐만 아니라 엄마 경숙과 코치 정욱도 끊임없이
생각 차이로 불화한다.
물론, 그들은 서서히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며 진심 어린 소통으로 나아간다.
기나긴 마라톤의 여정 속에서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과 화해의 손짓을 나누는 초원처럼 말이다.
그래서 <말아톤>은, 남다른 자신만의 확신으로 일관하는 이들이 얽히고설킨 타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호흡하며
보다 나은 관계로 발전하는지를 잔잔하면서도 밀도있게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눌한 말투와 표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그네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줌으로써 희화화된 깔깔거림이 아닌 해맑고
순진무구한 웃음을 던져주는 뜻밖의 설정 또한 <말아톤>의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람 중 눈여겨 볼 부분은, 삶을 뒤로한 채 초원의 거듭남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경숙의 아들을 향한
무한한 모성애가 자신에게로 향한 어긋난 집착이 아닌지 갈등하는 지점이다.
물론 천길 벼랑 끝에 몰린, 십수 년 동안 지탱해온, 그녀의 흔들리는 믿음이 끝내는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만 애미와 자식 간의 그 말로 이루할 수 없는 모진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되묻는다.
장애를 가진 이의 험난한 극복기를 통해서만 감동을 들이대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바로 이러한 미덕들이 영화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폐아 청년 배형진 군의 TV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말아톤>은 조승우 김미숙 이기영의 더할 나위 없는 호연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42.195Km의 지난한 여정을 펼치는 초원이 자신의 육체와 심장이 숨 가쁘게 살아 있음을 느끼듯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며 훈훈한 울림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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