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과 난치병/루게릭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2005-12-29 21:40]

이미피더 2009. 1. 16. 18:33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형의 흔적을 봤어.

                                                                      내 희망을 버리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을 했어….’ 》



10여 년간 루게릭병을 앓아 온 남일우(39) 씨는 역시 루게릭병을 앓던 형 영우 씨 방에서 유품을 정리하다

곱게 개어 놓은 셔츠와 바지를 발견했다.

 

양손의 검지 두 개밖에 움직이지 못했던 형이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석좌교수와 만날 때 입으려고 새로 산

옷이었다.

그러나 형은 황 교수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27년간 싸워 온 루게릭병이 악화돼 21일 숨을 거뒀다.

 

한 치의 구김도 없이 곱게 놓여 있는 형의 옷을 보고 일우 씨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형의 죽음으로 일우 씨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두 가지를 모두 잃을 뻔했다.

분신과도 같았던 형과 병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까지….

 

일우 씨는 아직 근육마비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언제 증세가 악화될지 모른다. ‘삶의 의욕’이 누구보다 강했던 형을 잃은 것이 이런 그의 심신을 더욱 괴롭히고 있다.


충남 서천군에서 인쇄공장에 다니던 영우 씨는 심각한 근육위축 증세를 보여 9년 전부터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왔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데도 심각한 고통이 뒤따랐지만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좋은

글과 그림, 음악을 올렸다.

 

몸은 힘들었지만 입가에서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얼굴 없는 인터넷 스타였던 그는 1년 전 자신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의 투병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 카페 ‘아이러브황우석’ 회원들이 연락하기 시작했다.

 

4월에는 이 카페의 운영진에 합류했다.

그렇게 맺은 황 교수와의 인연은 그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겨줬다.

일우 씨는 추석 다음 날인 9월 19일 “기쁜 소식이 있다”며 소주 한 잔 하자는 형의 얘기를 들었다.

형은 황 교수에게서 10월 21일에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평소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형은 얼큰하게 취해 동생에게 난치병 치료에 대한 기대를 털어놨다.

“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마루타(인체실험 대상자)’라도 기꺼이 돼 주고 싶다.

당장에 내 병을 고치지 못해도 손해 볼 것 없잖아. 내가 희생해 줄기세포 연구가 조금이라도 진척된다면 다른 난치병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나 형이 그토록 기다렸던 황 교수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일우 씨는 형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이젠 그럴 수도 없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이 불거져 나오자 영우 씨의 말수는 갈수록 줄었다.

 식사도 거른 채 TV와 신문, 인터넷을 찾아보는 형의 표정은 너무나 어두웠다.

“몸이 좋지 않다”며 가족에게도 말문을 닫은 영우 씨는 결국 45년의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우 씨도 절망감에 빠졌지만 형이 간직하고 있던 셔츠와 바지를

보면서 그는 ‘형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우 씨는 “난치병 환자로서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했으면 하는 강한 기대 때문에 실망이 컸던 것이 사실

이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황 교수를 통해 줄기세포 연구에 발전이 있었고 다른 많은 과학자가 치료 목적의 줄기세포 연구에

나섰다”면서 “조금 늦어지긴 하겠지만 줄기세포를 통한 치료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궁극적인 희망은 아들(10)과 딸(8)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다.

그의 아이들은 아직 루게릭병을 앓고 있지 않지만 성인이 되면 발병할지 모른다는 의사들의 말이 그를

두렵게 한다.

 

“어쩌면 제 병은 낫지 못할지 모르죠.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노력해 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형이나 나 같은

고통을 겪지 않을 겁니다.

이제 그분들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 돼 줬으면 합니다.”

 

 

루게릭병: 척수신경이나 간뇌의 운동세포가 서서히 파괴돼 근육이 위축되고 마비되는 질환이다.

               공식 병명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1930년대 미국 프로야구팀인 뉴욕 양키스의 선수 루게릭이 38세에 이 병으로 숨지면서 루게릭병으로

불리게 됐다.

세계적 천체물리학자인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도 루게릭병 환자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처음 보고된 루게릭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루게릭협회에 따르면 국내 환자는 1500여 명에 이른다.

 

 

 

The Prom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