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행복' 써내려간 굳은 몸의 굳은 의지
햇살이 길게 누운 땅위에
어둠속 축축한 절망의 향과
악마의 더러운 바람들 스며들어
지친 꿈을 잠재운다
노을 스쳐간 곳에 땅거미는 내려와
눈 어두운 자의 의식을 덮는다
희망은 눈 밝은 자의 것이기에
내게 고난 있어도 걱정은 않는다
꿈을 지닌 눈동자를 소유하고 있으니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그뿐
밤이 와도 뾰족한 어둠의 뼈를 발라내고
두툼한 희망을 발라 먹으면
아침의 태양을 맞을 수 있음을 알기에
두려움은 벗어버리고
용기만을 의식의 몸에 두른다.
('희망을 지닌 자'. 시인 김진우作 중에서)
[경인일보=이현준기자] 인천의 한 근육병 환자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진우(36)씨는 오늘도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전동휠체어와 산소호흡기에 몸을 의지한 채 모니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그는 화상키보드로 마우스를 힘겹게 움직이며 글자를 입력한다. 비록 몸은 불편하고 힘들지만 그는 모니터에 '희망'을 새겨넣는다.
그는 지난 2008년 장애인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하고, 자신의 웹사이트 'jinmiri.com'를 운영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자신이 앓고 있는 근육병으로 형제 두 명을 잃었다. '내가 근육병을 앓고 있으면서 얼마나 살까'하는 불안감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1974년 1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땐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다섯 살 땐 기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굉음을 내는 디젤기관차가 괴물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고 재밌어 부모님한테 기차를 태워달라고 졸랐다.
전체 학생이 30명 정도였던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동네 형 동생들끼리 뒷산을 다니면서 산앵두, 산딸기를 먹었다.
산에서 다람쥐와 까투리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겨울철엔 눈을 갖고 놀다 동상에 걸리기도 했다. 잘 뛰어다니고, 잘 걸어다녔다.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밝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쯤 됐을때 부터 걷는게 힘들어졌다. 걷는게 불편해지자 친구들이 이상한 듯 쳐다봤다.
이상한 걸음걸이를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속이 상했다. 그전까지는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공부도 하기 싫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소아마비 정도로만 생각했다. 6학년땐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중학교는 다닐 수 없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동생들이 부러웠다. 매일이 방학이었다.
외로웠다.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들이 사놓은 노래 테이프는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 준 친구가 됐다.
'바위섬'과 '민들레 홀씨되어', 가수 박남정의 노래들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책을 봤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못됐지만,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는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줬다.
그 때부터 잡지와 소설 가리지 않고 집에 있는 책들을 모두 읽었다.
19살때 형이 근육병으로 숨졌다.
'나도 죽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눈 앞이 막막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글쓰기는 이 같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평소 즐겨듣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낸 '시'가 방송에 소개됐다. 글쓰는 기쁨, 시의 기쁨을 알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시작(詩作)활동을 하게 됐다.
관동문학회, 세계민족작가연합회, 제천문학회, 포항현대문인협회 등에서 활발한 시작활동을 해온 그는 지난 2008년엔 월간 시사문단에서
신인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가 써온 시는 총 2천여편.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주된 시의 소재가 된다.
시를 쓰기위한 고민을 통해 그는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고 했다. '쓰면서 배운다'는 말을 절감한다.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겐 행복이다. 안 쓰면 몸이 괴로울 지경이다.
그는 근육병을 앓고 있는 그의 현실과 주변 상황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그가 시를 통해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희망'이다.
'환절기 시련의 바람에/ 떨어져버린 피멍든 낙엽이 서러워/ 눈시울이 젖어와도/ 굳건한 새날의 의식을 소유하니/ 다가올 혹독한 계절은 걱정이 없다'.
그는 최근 출간한 세 번째 시집 '희망의 실타래' 중 '시련의 행복'이란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또 '푸르른 시절을 꿈꾸며'란 시에서는 '고난에 맞아 쓰러지더라도/푸르른 시절을 꿈꾸며 버텨내자/ 마지막 선택과 갈 길 일지라도/'라며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책 머리에도 "경제적으로, 혹은 건강이나 심리적으로 힘겨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썼다.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요즘 컴퓨터를 활용한 편집디자인도 배우고 있다. 자신의 시집을 직접 제작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을 주는 시를 쓰고 싶어요. (살아 갈)용기를 잃지 않도록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요. 각박하기만 한 삶을
부드럽게 하는데 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자원봉사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는 오늘도 희망을 적는다. 시는 이제 그의 삶이다.
[출처 - 경인일보(http://www.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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