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닐케톤뇨증 - 선천성 대사효소결핍증'
일반인에겐 이름마저 생소한 이 병은 신체에서 정상적으로 아미노산인 페닐알라닌 대사를 할 수 없는 유전성 대사장애를 말한다. 뇌성마비와 증세가 비슷한 이 병은 신진대사에 필요한 효소가 부족해 생기는 질병으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환자가 10여명
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한 병이다.
밥은 먹지 않아도 약은 반드시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고통스런 병이지만, 이러한 장애의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고
당당히 대학을 졸업해 사회로 진출하는 한 젊은이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3일 삼육의명대 아동미술과를 졸업한 임윤아양. 그녀의 졸업은 특히 난치성질환의 장애를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한 젊은이의 모습과 많은 장애우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의지와 희망을 심어주었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이날 학사모를 쓰고 졸업가운을 입은 윤아양은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더욱이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실과 근면함으로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점을 인정받아 학교 측으로
부터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간 윤아양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을 다한 아버지와 어머니도 감회어린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마음껏 축하했다. 같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동생 승준씨도 누나의 졸업에 힘껏 박수를 보냈다.
아버지 임진수씨는 "윤아가 자기가 갖고 있는 장애를 이겨내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게 된 것도 고맙지만, 윤아를
이해하고 도와주신 교수님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주위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윤아양은 학창 시절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지난해 가을 서울 인사동에서 열었던 생애 첫 개인전을 꼽았다.
당시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던 윤아양은 이 전시회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밝게 웃었다.
많은 유명 화가들로부터 "마치 어린아이를 닮은 듯 순수하고 맑은 그림"이라는 칭찬을 들은 윤아양의 작품들은 대부분 꽃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었다.
윤아양은 이에 대해 "꽃은 아름답고 꾸밈이 없어 좋다"며 "앞으로도 꽃처럼 순수한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윤아양은 장애우들이 다니는 정민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마쳐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며 "훌륭한 화가가 되어 나처럼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윤아양은 앞으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시간을 내어 인근 사회복지기관에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장애우들을 위해
봉사할 계획이다.
아버지 임진수씨는 딸의 졸업을 바라보며 장애우들이 더욱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이해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윤아양처럼 대사성 질환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일반인들의 60~70% 정도밖에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특성을
이해해,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개발하고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장애우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장애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충분한
실력을 갖춘다면 사회에서의 경쟁에서도 당당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우선 학업에 충실한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각 기업이나 기관에서 많은 복지기금을 기탁하지만, 정작 장애인 채용에는 인색한 것 같다"고 지적하며
"장애인들이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는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들을 위해
배려한다면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을 하나 바르게 긋는 데도 온 몸의 힘과 정성을 다해야 할 만큼 어렵고 힘들지만, 윤아 양은 오늘도 연필을 들어 그림을 그린다. 그녀 마음의 캔버스에는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이 꽃처럼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선뜻 나서서 쉽게 할 수는 없는 일
졸업을 앞둔 윤아양을 만나러 가던 날, 그녀는 창가로 눈부시게 내리 쬐는 겨울햇살을 등지고 앉아 김 교수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고 있었다.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부자연스런 팔과 힘이 없어 제대로 붓을 쥐기조차 어려운 손가락은 선을 하나 긋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윤아양은 김 교수와 간간이 농담도 주고받으며 작품에 열중했다.
삼육의명대 아동미술과 김용선 교수와 임윤아양. 페닐케톤뇨증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살아가는 윤아양이 이처럼 대학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기까지에는 김 교수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헌신이 절대적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꼬박 몇 시간을 앉아 그림을 그려야 하는 윤아양을 옆에서 지켜보며 손수 지도하고, 그녀가 자신의 장애를
이겨내며 꿈과 목표를 성취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지난 2004년. 윤아양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그녀가 대학문을 두드릴 즈음, 아무리 장애를 지닌 불편한 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일반 학생들과 함께 정상적인 대학
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모두 의심했지만, 미술에 대한 윤아양의 열정을 읽은 김 교수는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로 이들은 때론 부녀처럼, 때론 친구처럼 사제의 정을 쌓아갔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열쇠를 아예 윤아양에게 쥐어주며 체력이 약한 그녀가 피곤하고 지칠 때면 언제든 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한 일이라곤 물을 떠주고, 붓을 빨아주고, 물감을 짜주는 일이 전부였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윤아양에게 전부였는지 모른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불편한 것들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챙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선뜻 나서서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난해 가을,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윤아양의 생애 첫 전시회를 열 수 있었던 것도 김 교수의 이 같은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교수는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무더웠던 그해 여름방학을 윤아양과 함께 작업실에서 그림에 묻혀 살았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윤아는 다른 친구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조금 느릴 뿐"이라며 단지 그것을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면서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제자를 바라보는 김 교수의 눈가엔 축하와 기쁨보다 남모를 걱정이 서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윤아양이 자신의 꿈과 바람을 실현해 갈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아직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장애우들이 그들 스스로 자아실현을 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가 아닌가 한다"며 "전문가들이나
지식인들이 그들의 멘토가 되어 장애우들의 도전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윤아양이 졸업한 이후에도 매주 월요일 계속해서 그녀의 그림지도를 맡아주기로 했다.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이 더욱 많기 때문에 한 발짝씩 계속해서 성장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아양이 자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혼자서 자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김 교수의 가장 큰 희망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윤아양은 많은 장애우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더 나아가 윤아 양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더함 없는 기쁨이자 보람일 것이다.
윤아양이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쓰던 날, 김 교수는 그녀에게 "이제 졸업이지만 제2, 제3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언젠가는
선생님과 함께 듀엣 전시회를 열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윤아양도 입학 후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자신을 지도해 준 김 교수에게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용기를 주셨다"며 "평생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문득, 이들의 모습에서 장애를 딛고 마음의 문으로 세상과 소통했던 헬런 켈러와 그런 헬렌 켈러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왔던 설리번 선생의 모습이 겹쳤다.
[출처 : 오마이뉴스 김범태 기자]
'희귀병과 난치병 > 페닐케톤뇨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귀병 남매 '예술가로 홀로 서기' ..... [2005-10-06 10:29 ] (0) | 2009.01.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