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들/아름답고 슬픈이야기

MBC 5월가정의달 특집 휴먼다큐 '사랑'을 소개합니다..[2007-05-10 16:59]

이미피더 2009. 1. 29. 19:17

 

 

  

1편: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 5월 15일(화) 밤 11시 5분 )


120cm의 엄지공주, 엄마를 꿈꾸다


2006년 12월. 산부인과 불임클리닉에 특별한 환자가 찾아왔다.

120cm의 키 35kg의 몸무게, 8살짜리 초등학생 1학년 정도의 작은 몸을 가진 그녀는 엄지공주로 알려진 방송인 윤선아(29)씨.

 

그녀는 달걀껍데기처럼 뼈가 쉽게 으스러지는 희귀병, 골형성부전증을 가지고 있는 1급 장애인이면서도 경쟁을 뚫고 장애인

방송인 선발 대회에서 대상을 타고 공중파 방송 라디오 DJ로 활동했는가 하면, 희망원정대로 히말라야 정상 등반에도 성공했다.

그런 그녀가 또 한 번 큰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엄마가 되려는 것이다



골형성부전증 1급 장애인, 윤선아


선천성 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윤선아씨는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뼈가 부러졌는가하면 생후 20일부터는

전화벨 소리에도 뼈가 부러지고, 엄마가 옷을 갈아입히다가도 뼈가 부러졌다.

 

지금까지 뼈가 부러진 횟수만 해도 50~60번.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눈물겨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금세 그녀가 그런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예쁜 얼굴에 늘 생글거리는 미소와 재치 있는 입담, 발랄한 성격..그녀의 어릴 적 꿈은 방송국 아나운서, 120cm의 작은 키도

그녀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아니었다.

 

1999년 혼자서 인터넷상에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CJ(사이버 자키)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방송은 많은 청취자들의 입소문을 탔고, 결국 공중파 방송 DJ의 꿈도 이루게 됐다.

방송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그녀의 홈피를 방문하는 고정 팬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방송을 통해 운명 같은 사랑, 변희철(28)씨를 만났다.


 

■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삶과 남편의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윤선아씨는 이제 결혼 5년차.

남편 변희철씨는 여전히 불편한 선아씨를 위해 출근 할 때면 밥상을 차려주고. 퇴근하고 돌아올 때면 따뜻한 물을 받아 그녀의

손과 발을 닦아 준다.

 

지난 5년간 그녀의 장애를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채워준 고마운 남편.

이제 선아씨는, 누군가 그녀에게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삶과 남편의 사랑,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조금도 망설이지지

않고 남편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남편을 위해 선아씨가 어려운 결심을 했다. 아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



■ “많이 망설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 자연임신이 되지 않아 ‘불임’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따로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부담때문이었다. 우선 주위의 만류가 큰 짐이 됐다. “네 한 몸도 돌보지 못하면서 무슨 아기냐, 남편만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 그냥 둘이 재미있게 살아라“ 그러나 그것보다 더 걱정이 됐던 것은 나중에 아이가 엄마를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났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결심했다.

오히려 아이가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만큼 유명한 방송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 “쉽지 않은 길, 하지만 이 악물고 가겠습니다.”

 

 

 

 

윤선아씨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자연임신의 경우 선아씨의 병인 ‘골형성부 전증’이 유전될 가능성이 높은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골형성부전증 환자도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 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혈액검사를 통해 유전자상 돌연변이의 위치를 찾아내고, 시험관 아기 시술로 수정란을

다수 만들어, 골형성부전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는 수정란만을 착상

시키게 된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통도 뒤따른다.

하지만 사랑의 결실을 갈망하는 두 사람은 흔쾌히 그 길을 가기로 한다.

희철씨와 선아씨는 엄마를 닮은 예쁜 딸을 상상하며 5개월여의 고단한 과정을 버텨왔다.

과연 120cm의 엄지 공주, 윤선아씨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우리 가족에게 남은 시간은 한 달 ........

 

 

 

 

2편: 안녕아빠 ( 5월 16일(수) 밤 11시 15분)


2006년 11월, 서른여섯 살의 김은희 씨는 남편의 담당의사로부터 청천 벽력같은 그 한마디를 듣는다

“올해를 못 넘기겠습니다. 준비하세요”

 

남편 이준호씨는 이제 겨우 마흔 한 살

은희씨는 차마 남편을 보내는 일도 상상할 수 없고 초등학생인 아들 영훈(9)과 딸 규빈(7)을 데리고 남겨질 자신의 삶도 받아

들이기 힘들다.

 

남편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1월, 가족은 기적을 기대해왔다.

사실 이준호씨에게 처음 암이 발병한 것은 1999년, 결혼한 지 2년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살아주었다

아내도 남편도 이번 역시 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고 기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0개월 후 이미 암은 대장은 물론 십이지장장, 위, 폐까지 퍼져있다.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여지가 없다

 

 


■ 많은 것을 버리고 맺은 사랑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 변변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준호 씨의 형편 때문에 은희씨 부모님은 막내딸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은희 씨는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었다.

 

1997년 봄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아이 영훈이를 낳고 둘째 규빈이를 임신한지 3개월째, 준호씨가 쓰러졌다. 대장암이었다. 친정가족들이 달려왔다.

가족들은 유산을 권했다 남편 없이 아이 둘을 키우는 딸을 지켜볼 수 없다며. 이번에도 은희씨는 고집을 부렸다.

예쁜 딸 규빈이를 낳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준호씨는 수술로 대장을 잘라내고 일어섰던 것이다.



 ■ 강한 아내, 은희 씨

 

 

 

남편이 처음 쓰러졌던 99년 이후 7년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것 모두 은희씨의 몫이었다

더욱이 지난 1년 준호씨가 다시 암으로 입원한 이래 은희씨에게는 그야말로 슈퍼우먼 아내, 슈퍼우먼 엄마가 되야 하는

하루하루였다.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일어나서 영훈과 규빈을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한다.

출근을 해서도 근무시간 틈틈이 병원에 들러 남편을 살핀다.

그리고 퇴근 후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고 나면, 다시 병원으로 와서 준호씨를 간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해왔다.

 

사실 은희씨 역시 갑상선이상으로 휴식과 안정을 취해야하는 상황, 담당의사가 제발 본인 몸도 챙기기를 당부하지만, 그녀에게

자신은 없다.

죽음을 앞둔 남편 뒷바라지가 그녀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 차마 할 수 없는 말


온몸에 퍼진 암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심각한 통증이 몰려온다.

하루 1000ml의 모르핀 투여로도 준호씨의 고통을 막을 수 없다. 때때로 찾아오는 환각과 환청, 이제 남편은 은희씨를 몰라보기

조차 한다.


그럼에도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간호에 매달리는 아내, 은희씨는 결국 준호씨의 막내 동생이자 카톨릭 수사인 이종호씨가

가족을 대표해서 준호씨에게 죽음이 가까워져 있음을 알린다.

 

형에게 가족과 함께 아름답게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는 준호씨, 때때로 살고 싶다고 절규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아내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다.

 

 



■ 아빠, 제발 힘내세요

 

 

 

첫 눈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점점 의식조차 희미해지는 준호씨, 그래도 그의 눈빛이 빛나는 순간은 바로 아이들을 만날 때다.

 

은희씨와 아이들을 그런 아빠를 위해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아직은 헤어질 수 없는 가족들

모두가 부둥켜안은 채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2006년이 며칠 남지 않은 밤이었다......

 

 

 


 

 

 

                      충북의 오지, 벌랏마을에 사는 21개월 선우....

 

 

 

3편: 버랏마을 선우네( 5월 17일(목) 밤 11시 15분 )


선우는 자연 속에서 크는 아이다.

그 누가 봐도 평범한, 21개월 된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자연 속에서 자연 상태 그대로, 유기농으로 크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는 바람을 안다. 새처럼 울 줄도 안다. 해지는 산도 안다.

흙과 돌을 손으로 느끼고, 직접 맛도 본다. 마치 옛 선인들이나 할 법한 생활 속에 21개월짜리 어린 선우가 있다.

 

이 부모 역시 특이하다.

이십년간 전 세계를 돌며 명산수련을 해온 명상가 이경옥(45)씨. 세상에 낙담해 마흔까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엄마는

벌랏마을을 찾아 들었다.


한때 미술 학원을 운영하며 큰돈도 벌어봤지만, 돈 없이 사는 삶을 꿈꿔 온 이종국(44)씨. 아빠는 세상을 피해 벌랏마을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자연과 선우.

 

겉모습은 조선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선우네 식구가 오지 속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휴먼다큐 사랑에서 일 년 동안

그 삶을 기록해 본다.



■ 바람을 아는 아이 선우

 

 

 

 

 

땅 속 지렁이를 기절시켜 주워 먹고, 사마귀와 가재를 친구로 알고, 개울가의 오리와 인사하는 아이.

하늘을 나는 새와 대화하고, 동네 멍멍이와 인사하는 아이.

 

자연을 그리는 아이. 동화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아이가 있다.

예전에는 나룻배를 타고 들어와야 했다는 육지 속의 섬.

 

충북 청원군 오지, 벌랏마을에 살고 있는 선우가 그 독특한 일상의 주인공이다.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는 별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선우에게 자연은 유일한 친구이자 푸근한 엄마이다.

도시의 아이들과는 달리 자연 속에 그냥 놓아진 채 크고 있는 선우.

 

깡촌에서 자연과 어울리는 것이 선우의 하루 일과이다.

그리고 선우를 자연의 아들로 자랄 수 있게 만드는 부부의 특별한 육아방법이 있다.

 

황톳물 입힌 천연 기저귀, 선우만의 통나무 집 손수 짓기, 나물밥과 가지, 고추 등 자연 그대로의 맛 선물하기, 나무소리와

바람소리 들려주기 등이 바로 그것.

그 속에서 단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사고를 치는 특별한 자연의 아이. 선우의 일상이 궁금해지는데...

 


■ 21개월 된 선우는 일꾼


이제 21개월 밖에 안 된 아이. 선우의 일상은 특별하다.

부모가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라고 해서 애지중지 키운다고 생각하면 오산.

 

감 따러 가기. 나무하기, 통나무 옮기기, 돌 주우러 산타기, 장작 쌓기, 고추 따기, 산양 젖먹이기 등등.

이 모두가 선우의 하루를 채우는 특별한 생활이다.

 

부부는 이제 21개월 된 어린 아들 선우를 반가운 일꾼으로 생각한다.

선우가 두 돌이 되면 지게를 지우겠다는 야무진 계획까지 세워둔 아빠.

그 품 안에서 선우는 뭐든지 스스로 하는 방법을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다.

 

이 부부가 선우를 키우는 방법은 무조건‘ 냅둬유~’

벌랏마을, 유일한 아이 선우는 어른 못지않은 일꾼이다.

 

 

■ 선우, 독립할 때가 왔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사고뭉치 선우의 좌충우돌 젖병 차지하기.

봄을 맞아 선우네에 새로운 사건들이 싹트기 시작한다.

 

우유라고는 엄마 젖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선우.

갑자기 나타난 산양과 젖병 때문에 치고 박다가, 별안간 젖떼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엄마 품을 떠나게 된 선우가 본격적으로 독립의 걸음마를 시작한다.

 

선우의 독립 선물로 아빠는 선우만의 공간 만들기로 분주한데. 설계도도 그리고, 통나무도 직접 다듬어 완성된 자연 속 선우만의

공간. 이제는 한 발짝 더 부모 곁을 떠나 스스로 자연과 소통하게 된 까까머리 선우.

자연을 마음에 품고 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벌랏마을, 선우의 일기.


 

 


 

 

             첫 딸이 태어난 날, 엄마는 암 말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4편: 엄마의 약속 ( 5월 19일(토) 밤 11시 )


딸이 삶을 시작한 그 날, 죽음과 마주하게 된 엄마.

이제 막 백일을 넘긴 첫 딸 소윤이.

 

첫 출산을 하자마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33살의 젊은 안소봉(33).

30살 애기아빠인 남편 김재문(30). 그리고 이제 백일을 넘긴 딸 소윤이.

세상살이가 간단치 않다지만 이들 세 식구의 사연만큼 기막힌 게 있을까?

 

지난 2006년 9월 21일. 이들 부부가 간절히 기다리던 첫 딸 소윤이가 태어났다.

딸과 만나는 순간 임신 중 겪었던 통증의 고통은 끝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 삶을 시작한 딸. 소윤이가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그것은 이 가족이 헤쳐 나가야 할 고통의 시작이었다.

 

엄마 안소봉씨의 몸에서 10개월 동안 암세포와 딸 소윤이가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위를 시커멓게 만든 암세포는 이미 간까지 전이되어 있는 상태.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빨리 죽여 달라고 빌어도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우는 어린 딸을 보며 안소봉씨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젖 한 번 물려보지도 못한 내 딸 소윤이를 두고 죽을 수는 없다.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한 내 딸을 위해서 나는 살겠다.

그렇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기나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암까지 사랑한 엄마

 

 

 

 

엄마의 꿈은 소윤이가 태어나면 모유를 먹이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출산 다음날, 암으로 인한 통증 조절을 위해 투여하는(마약성 진통제)까지

거부한 독한 엄마다.

 

10개월 동안 암을 생으로 견뎌냈으니 얼마나 강한 엄마인가. 초보 엄마 안소봉씨는 세상의

모든 산모가 다 자기처럼 견디기 힘든 고통을 참는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을 견디면서 엄마가 되는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10개월 후, 딸이 태어나면 고통은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를 기다린 것은 이제야 만난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6개월일 거라는 통보였다.

 

아무리 믿을 수 없다고 외쳐 봐도 눈을 뜨면 또다시 통증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암세포는 끊임없이 커지고 있는 절망 속 현실이었다.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 몸부림 칠 때 소윤이가 밉기도 했다는 엄마.

너만 아니면, 임신 중 검사만 빨리 받았었더라면, 내가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어린 딸 소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 순간 그녀는 아직 엄마가 아니었다.

단지 살고 싶은 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 그것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듯이 안소봉씨의 마음이기도 했다.


엄마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짧은 삶에 욕심을 냈다.

그렇게 소윤의 생명과 바꾼, 자기 몸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암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암세포 때문에 새까맣게 변한 위를 보며 ‘이 놈들이 결국 날 굶어죽일 생각이군. 나쁜 놈들...’이라며 농담도 한다.

 

임신 중, 암이란 걸 알았다면 소윤이를 포기해야 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엄마가 되게 해준 하늘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안소봉씨는 남편과 딸을 생각하며 암세포마저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

그렇게 우는 딸을 품에 안고 그녀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소윤이의 백일


소윤이가 태어난 지 벌써 백일이 됐다.

어린 딸이 태어날 때, 배속에서 삼킨 엄마의 검붉은 피를 토하고, 염증수치가 높아 백일까지 살 수 있을까.

건강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다.

 

그리고 엄마의 건강도 딸의 백일잔치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안했다.

하지만 모녀는 강했다. 보란 듯이 백일을 견뎌줬다.

그러나 결국 투병 중인 엄마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축하받아야할 딸의 백일잔치는 취소됐다.

 

미안해할 아빠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소윤이 병원을 찾았다.

이미 종양으로 인해 위와 십이지장이 연결되는 통로가 막혀 음식물을 전혀 섭취하지 못한지 보름째.

몸을 가눌 힘도 없는 엄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딸을 조심스레 품에 안는다.

 

딸 소윤이의 백일을 축하하고자, 직접 쓴 편지를 소윤이에게 읽어주는 부부.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딸에게 부부의 마음을 전한다.

내 딸 소윤이를 사랑한다고...네가 태어나서 고맙다고.....

 

 


엄마의 새로운 약속

6개월 째 암과 힘겨운 싸움 중인 엄마.

항암치료를 앞둔 하루 전 날, 뒤늦게 소윤이의 백일 기념사진촬영을 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첫 가족사진. 엄마는 어린 딸에게 약속한다.

 

사랑하는 내 딸 소윤아 돌잔치는 꼭 해줄게!!

그러려면 반드시 일 년은 더 살아야 한다. 엄마는 소망한다.

 

소윤의 엄마로, 소윤은 자신의 딸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소윤이가 ‘엄마’라고 또렷이 부르는 그날까지 만이라도 짧은 삶을 허락해 달라고.

 

2007년 봄. 앞으로 남은 시간은 최소 일 년. 딸을 향한 엄마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내 남편 재문

 

 

아내보다 세 살 어린 남편 김재문씨.

첫 딸의 탄생을 축하받을 틈도 없이 아내의 시한부 6개월 판정을 선고받은 남편이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아니,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되돌아 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 악몽에서 깨기 위해 잠들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죽음이라는 절망이 아내에게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아픈 딸을 떼어놓고 무작정 서울로 향한 어린 남편.

 

아내 간병하랴, 딸 키우랴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그는 얘기한다.

두 여자가 살아만 준다면 평생 아내와 딸의 든든한 머슴이 되겠다고.....

그때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릴 거라고. 꼭 그렇게 될 거라고....

 

 


 

 

 

 


온 몸이 굳어 돌처럼 변해가는 박진식씨(40세).

그는 돌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비된 몸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돌시인은 희망이란 단어를 써 내려간다.

 

돌시인 옆에는 투병30년 동안 한결같이 그를 돌봐온 어머니 조순씨(61세)가 계신다.

스무살까지만 살 거라는 기대를 두 배로 살아내어 돌시인은 올해 마흔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가 달라졌다.

마네킹처럼 굳어버린 몸을 일으킬 때면 “아이구! 어이구!” 하는 후렴구가 길어지더니 어머니는 아예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지

않겠다고 드러누우셨다.

 

올해 환갑이 되신 어머니. 어머니는 늙어가고 계신다.

그리고 돌시인의 투병생활은 기약이 없다. 이제 어머니와 돌시인의 머리감기 한판 전쟁이 시작된다.

 

돌시인과 어머니의 이야기는 아픈 사람을 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길어지는 투병생활 속에서 가족들은 조금씩 지쳐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간병은 이제 일상이 되어있고, 가족들은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다.

그러나 힘들고 고달프지만 돌시인과 어머니에게는 마음 속 깊이 흐르는 사랑이 있다.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눈물도 이젠 내게 짐이 되는가 봅니다(박진식시인의 시 중에서)

 

열 살 때부터 다리에 힘이 빠져 걷기 힘들더니, 박진식씨의 몸은 조금씩 굳어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 후인 14살 때부터는 아예 자리에 드러누웠다.

지난 30년 동안 석회화증으로 몸은 조금씩 돌처럼 굳어서, 이제 그의 육신은 시멘트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되었다.

 

투병30년 동안 그가 흘린 눈물은 산을 이루고 강을 이루었지만, 시인은 굳어버린 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을 수가

없었다. 30년의 투병생활 동안 오로지 어머니가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 시인이 되다

 

 

 마비된 몸

 마비된 언어

 굳어버린 손가락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를 겨우 썼다“

(시인의 시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두 평의 공간.

석회화되어 굳어버린 몸.

방이라는 공간과 육체라는 틀 속에 이중적으로 갇혀있는 박진식씨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시를 쓴다.

 

무엇보다 박진식씨는 어머니를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희생과 고통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란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새로 나온 시집을 보여드리면 언제나 어머니는 “아이고 장한 내 아들!!”하고 기뻐하셨다.

시를 쓰는 건 그에게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 연소성 피부근염에 의한 범발성 석회화증

 

 

 

지난 30년 동안 한결같이 박진식씨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신 어머니.


의사는 박진식씨에게 스무 살까지만 살 거라고 했지만 그는 두 배를 살아내어

올해 마흔이 되었다.


최근에야 “연소성 피부근염에 의한 범발성 석회화증”이란 병명도 알게 되었다.

석회화증 환자 중 박진식씨는 세계에서 가장 심한 케이스라고 한다.

 

하루하루가 생의 마지막인 듯 살아온 박진식씨는 이제 마흔이 되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다만 몸이 굳어진 채 늙어갈 뿐이다.

또한 어머니도 점점 더 늙어 가신다....

 

 

 

 



■ 어머니가 달라졌다!!

 

 

 

 당신은 내게

 늘 바람막이가 되고

 나는 늘 당신의 모진

 바람만 되는 것을“

(시인의 시 ”사모곡“ 중에서)

 

어머니하고 부르시면 곧장 달려오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세 번 네 번을 부르면 한참 뒤에야 ‘어이쿠!’하시며 일어난다.

어머니는 늙어가고 계신다.

돌시인은 몸무게가 늘어가고 있다.

 

어머니는 점점 돌시인을 힘에 부쳐하신다.

머리를 감는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돌시인과 어머니는 신경전을 벌인다.


어머니: 진식아? 오늘은 그냥 지나가면 안 되겠니? 엄마가 머리가 아프다!

진 식: 어머니 가려워 미치겠어! 꼭 감아야혀!!

어머니는 언제까지 돌시인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까?


■ 환갑이 되신 어머니

 

 

 당신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게 없습니다“(시인의 시 빈 손 중에서)


어머니를 가장 편하게 하는 길은 자신이 어머니를 떠나는 것이라고 박진식씨는 말한다.

어머니의 어깨에서 자신의 짐을 내려드리는 거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은 14살 소년인 박진식씨는 어머니를 떠나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한다.

단 하루라도 어머니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시인이 환갑을 맞으신 어머니를 위해 자신만의 사랑을 펼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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