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들/아름답고 슬픈이야기

죽음 앞에서 진정한 사랑 보여준 '안녕 아빠'....[2007-05-18 11:05 ]

이미피더 2009. 1. 30. 22:21

 

 

 

"어떻게 하면 아빠가 나을 것 같아요?"

"우리가 도와주면"(규빈),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으면"(영훈)

 

16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두번째 이야기 '안녕 아빠'가 많은 시청자의 눈시울을 적셨다.

'안녕 아빠'는 지난해 1월 대장암 판정을 받고 12월 세상을 떠난 이준호(41)씨의 이야기다.

 

아내 김은희(37)씨와 아들 영훈(9)과 딸 규빈(7)은 힘겹게 암 투병 중인 아빠를 위해 울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아빠는 이런 가족이 더 안쓰럽기만 하다.

 

◇"올해를 못넘기겠습니다"=지난해 11월 은희씨는 남편의 담당의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올해를 못 넘기겠습니다. 준비하세요." 준호씨의 암은 이미 십이지장.위.폐까지 퍼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남편을 보내야 하나.....

 

 

 

부부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변변한 직장 하나 없는 준호씨에 대해 은희씨의 부모는 "결혼은 절대 안된다"고 말렸다.

그러나 은희씨는 결국 준호씨를 선택했고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1997년 봄이었다.

 

첫아이 영훈이를 낳고 둘째 규빈이를 임신한 지 3개월째가 되던 99년. 준호씨가 대장암으로 쓰러졌다.

가족들은 "남편 없이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무리"라며 유산을 권유했다.

 

그러나 은희씨는 아이를 낳았고 준호씨는 오른쪽 대장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은 후 다시 일어섰다.

7년이 지나도록 준호씨의 건강엔 별 탈이 없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 모두 은희씨의 몫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가족이 모여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지난해 또 찾아온 대장암.

온몸에 퍼진 암 때문에 모르핀을 매일 1000㎎씩 투여해도 준호씨의 고통은 막을 수 없었다.

 

이젠 헤어질 준비를 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12월 어느날. 준호씨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아이들은 아빠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아빠 힘내세요…우리가 있어요."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도와주고 엄마 아빠 말 잘 들으면 아빠가 나을 것 같아요."

 

아직은 헤어짐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창 밖엔 눈이 내렸다.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안녕 아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기 전 남편 준호씨는

"조금씩 나이가 들고 철들어 가면서 아빠 없는 그늘이 느껴질 텐데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놀림받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이들이다"라고 말했다.

 

아내 김씨는 "지금은 많이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참 행복하다"며

"아빠(남편)를 온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겐 중학생 되면 보여줄거예요"

=영훈이와 규빈이는 자신들이 TV에 나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은희씨의 판단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TV에 아빠가 나온다고 말 안했어요, 아빠가 저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나이가 될 때 보여주고 싶거든요.

 

" 은희씨는 17일 프로그램 연출자인 유해진 PD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 보여주면 어린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며

"중학생이 될 때 쯤 보여주면 큰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네티즌 격려 댓글 쇄도='안녕 아빠' 방송 후 은희씨 가족을 격려하는 네티즌의 댓글이 MBC홈페이지 및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쇄도하고 있다.

 

"앞으로 살기 버겁겠지만 남편을 닮은 아이들을 보며 힘내서 사세요"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이 남편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될 거예요"라는 등 네티즌의 위로 댓글이 쏟아지고 있고 일부에서는

재방영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고 있다.

 

'안녕 아빠'의 내레이션을 맡은 탤런트 하희라는 "가장 소중한 가족의 사랑은 가까이에 있지만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며

"투병 중에도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가족들을 배려하는 이준호씨를 보면서 사랑만 있으면 그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출처 : 중앙일보 이지은 기자]

 

 

 


 

 

'안녕, 아빠' 유해진PD의 못다한 이야기

 

 

 

 

정신분석학에서 '전이(transference)'란 상담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자신이 품었던 감정·사고·희망 등을 치료자인 의사에게

그대로 옮기는 현상을 말한다.

 

2년 연속 MBC 다큐멘터리 '사랑'을 제작한 유해진 PD에게 지난 촬영기간은 인생에서 결코 못 잊을 시간이었음과 동시에

'감정적 전이'를 경험한 때이기도 했다.

 

지난해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인물 서영란(당시 28)씨에 이어 이번 '안녕 아빠'의 이준호 씨까지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을 모두 방송을 제작하면서 잃는 아픔을 맛봐야 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내내 갈등도 많았어요.

죽음을 앞둔 분의 사연을 다루는 게 아무래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도 많았죠.

 

하지만 결국 죽음도 인간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또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데 제작진의 중지를 모았죠"

 

 

 

 

 

다큐멘터리의 주제인 '사랑'과는 얼핏 보면 상반된 이미지로 읽히는 '죽음'에 대해 유 PD가 2년 연속 카메라 렌즈를 밀착한 이유다.

한국사회는 유난히 죽음에 대해 터부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숫자 4가 죽을 사(死)를 연상시킨다며 불길한 숫자라고 엘리베이터에서 사층을 뺄 정도다.

탄생과 결혼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중 하나인 '죽음'에 대해 피하려고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를 다시 생각하고 '아름다운

마침'을 고민해 보고자 했다는 것이 유 PD가 전하는 '안녕 아빠'의 기획의도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장장 7개월에 걸쳐 이준호 씨 가족과 눈물과 웃음을 함께한 제작진의 심적 고통은 결코

적지 않았다.

 

담당 카메라맨은 쏟아지는 눈물 탓에 촬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편집을 위해 몇 개월간 수십 번씩

테이프를 돌려 보며 이준호 씨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스태프들은 영상을 되돌려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차마 마음이 아파 방송을 볼 수 없었다'는 시청소감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띄는 것을 감안할 때, 직업상 수백번 같은 장면을 보고

편집을 고민해야 하는 제작진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사람의 임종 장면을 처음 목격했다는 유 PD는 "준호 씨의 임종 당시 모습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지만 방송 상에서는 빈

침상에 햇살이 내리쬐는 장면으로 대신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 역시 18개월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유 PD는 두 아이를 두고 간 이준호 씨의 모습과 자신의 상황이 오버랩돼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준호 씨의 음성과 임종 당시 모습이 몇 달간 계속 꿈에 보여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요즘도 그렇구요. 새삼 '하루하루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 많이 하죠.

예전엔 몰랐는데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도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준호 씨의 아이들인 영훈이, 규빈이의 삼촌 노릇도 잘 해줘야지요" 유 PD가 전하는 마지막 촬영 소감이었다.

[출처 : 마이데일리 장서윤 기자 (ciel@mydail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