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절대 희귀한 것이 아 닙니다”
“내 동생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다회(11)는 동생 유빈(9)이의 ‘또래 선생님’이다.
언어·인지능력이 5살에 못 미치는 동생과 만화나 책을 보면서
‘언어치료사’ 구실도 한다.
둘이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이 유빈이의 언어감각을 자연스레 북돋울 수 있어서다.
유빈이는 ‘선천성 대사질환’을 앓고 있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특정효소가 부족해, 단백질 찌꺼기의 독성이 뇌에 손상을 주는 희귀질환이다.
그래서 지금 유빈이의 좌뇌는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다회네 가족 풍경은 어둡지 않다.
오히려 웃음꽃이 날마다 피는 ‘희귀한 가정’이다.
유빈이는 태어난 지 백일 만에 병을 앓기 시작했다.
뇌손상이 너무 심해 앞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담당 의사에게 ‘희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어머니 이은정(38)씨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남편 김천호(38)씨와 아이 문제로 날마다 다투다, 이혼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씨는 “성당에 가 ‘유빈이를 하늘로 데려가달라’고 기도한 일이 있다”며 “하지만 이튿날 ‘우리 아이를
제발 살려달라’며 한참을 엎드려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로움과 절망이 온 가족을 짓눌렀다.
단백질 분해 효소 부족 ‘선천성 대사질환’에 뇌 손상 언어·인지능력 큰 장애
하지만 희망의 작은 빛줄기가 조금씩 커져 절망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남편 김씨가 ‘희망을 갖고 노력해 보자’며 이씨를 힘써 다독였고,
이씨와 다회는 ‘사랑의 편지’를 수백 차례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감싸안았다.
그사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년도 살기 어렵다던 유빈이는 기적처럼 쑥쑥 자랐고, 언어능력도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해마다 좋아졌다.
원활한 치료와 보살핌을 위해 김씨의 직장인 외환은행에선 근무지를 울산에서 서울 본점으로 옮겨줬다.
그 결과 조금씩 행복을 ‘재발견’하게 된 부부는 예전처럼 ‘잘못된 만남’으로 아이가 병에 걸렸다고 서로를 탓하지 않게 됐다.
더욱이 이달 들어선 지난해까지 언어능력 진단에선 3살에 머물렀던 유빈이가 5살에 해당한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고,
다회도 지난 5일 서울시가 연 ‘내친구 서울 어린이 백일장’에서 산문으로 가작을 받았다.
5월이 다회네 가족에겐 진정한 ‘가정의 달’인 셈이다.
가족들 포기않고 희망 지펴 마침내 시한부 딛고 말 술술“사회복지제도 미비 아쉬워”
이런 다회네 가족에도 2% 모자란 게 있다. 유빈이가 약물과 음악·미술치료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얼마 전부터 효능이 좋은 신약이 수입되고 있지만 약값이 한달에 100만원 가까이 된다.
헐거운 사회복지제도가 새삼 아쉬운 대목이다.
아버지 김씨는 “유빈이처럼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들이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따라 ‘안전’하게
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회가 백일장에서 써낸 글의 한 대목도 아버지 김씨의 소망과 다르지 않다.
“나에게는 어린 장애인 동생이 있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보면 멀리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출처 : 한겨레-전진식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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