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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Feature - 군산..... [ 2007/12/07 ]

이미피더 2009. 2. 23. 22:44

 

 

 

1. 항구, 노을의 파도에 꿈을 싣다 ....

 

군산 바다의 드넓은 갯벌이 하나 둘 매립되고 간척되면서 밀물과 썰물이 차츰 그 세력을 잃고 있다.

달의 인력(引力)이 허망해진 자리는 태양이 꿰찼다. 해질녘 잔뜩 부풀어 오른 태양은 노을의 파도가 되어 육지를 향해 밀려온다.

 

그 붉은 바람은 갈대와 칠면초를 흔들고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돌린다.

뭍으로 변해가는 군산의 바다엔 지금 새로운 꿈을 실은 빛의 파도가 일렁인다.

 

 

 

 

갈매기 한 마리가 사막 위를 날아오른다. 모래 언덕 위에 난데없이 갈매기라니, 쉽게 조합이 되지 않는 풍경이다.

하지만 군산 앞 바다에서 벌어지는 새만금 간척사업 현장에선 흔한 광경이다.

 

군산 서쪽 비응도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모래 둑이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다.

신시도를 거쳐 부안까지 약 33㎞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조성 중이다.

 

방조제의 비포장 임시 도로는 사막을 연상시킨다. 길 양옆으로 높다란 모래 언덕이 굽이치며 흘러간다.

차량이 일으키는 모래 먼지에 시야가 온통 흐려진다.

사막을 달리는 듯 신기루 같은 느낌은 사구(砂丘) 너머로 갈매기가 불쑥 나타나 차창 옆을 지날 때 비로소 사라진다.

 

 

 

 

새만금 방조제는 망망대해에 한 획으로 그은 금이다.

인간은 신이 만든 바다 위에 길을 내기 위해 상상하기 힘든 양의 바위와 자갈과 모래를 파도 속에 투하했다.

 

1991년부터 시작된 물막이 공사가 지난해 4월 마무리되면서 조수의 흐름은 오직 배수갑문을 통해서만 가능해졌다.

서울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바다가 이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형국이 되었다.

 

군산의 간척사업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19세기 말 농상공부대신이었던 이완용이 군산 수산리 만경강 하구에 간척사업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새만금 방조제의 군산 기점인 비응도 역시 예전엔 섬이었다.

 

군장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바다가 매립돼 하루아침에 육지로 변모했다.

굴을 채취하던 옛 사람들의 흔적이 지금도 빗살무늬토기와 패총으로 남아 있다.

 

 

 

 

현재 비응도-신시도 방조제는 출입이 제한적이다.

내년 말 방조제 도로 개통을 목표로 도로 높임 공사와 아스팔트 포장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농촌공사 새만금사업단과 시공회사가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공사 관계 차량과 신시도 주민 차량만 출입을 허용한다.

물론 군산 연안여객터미널이나 낚싯배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신시도 출입이 자유롭다.

 

방조제가 이어져 사실상 뭍이 된 신시도는 본래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월영봉(해발 199m) 단풍에 매료돼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왔다. 길이 33㎞ 방조제의 중앙에 위치해 섬 봉우리에 오르면 새만금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방조제 안쪽의 갇혀버린 바다와 선유도, 비안도 등 고군산군도 전역이 시야에 잡힌다.

신시도는 아마도 내년 말 방조제 포장도로가 완공되면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당분간 몸살을 앓아야 할 것이다.

 

 

 

 

신시도 배수갑문 인근 능선에서 새만금을 바라보는 마음은 복잡하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전망은 처음부터 장밋빛과 잿빛 사이를 오갔다.

 

쌀이 남아도는 판국이라 간척지에 농지와 담수호를 조성해 식량기지로 삼겠다던 애초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관련 지자체들은 새만금을 환황해권 물류 및 관광 도시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들도 저마다 새만금에 대한 각종 정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편에선 환경단체와 어민들이 지금이라도 물막이를 터서 갯벌을 되살리라고 주장한다.

 

방조제가 조수의 흐름을 막아버려 갯벌이 바닥부터 썩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갯벌을 보존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익이라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새만금 동상이몽이 혼재하는 와중에 군산의 새 명물로 떠오른 것이 풍력발전기이다.

현재 비응항 북쪽 해안에 10기가 세워져 있다. 방조제 사업이 완공되면 새만금지구에 추가로 40기가 설치될 예정이다.

 

풍력발전기는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풍차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방파제 안쪽에 나란히 도열해 있다.

세 갈래 날개의 바람개비가 회전하면서 전기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바람개비가 도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다. 서해 바람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제멋대로고 세기가 약해 발전량이 그리 많지 않다.

 

군산의 갯벌은 수십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들 만큼 비옥하지만, 그 위에 부는 바람은 척박한 셈이다.

군산을 휘감아 나가는 금강의 탁류가 흘러들어가 바람마저 유장해졌나 보다.......

 

 

 

2. 시대의 탁류를 헤쳐 온 항구

 

 

 

20세기 초 군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빠르게 부상한 도시였다.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가 전부였던 포구는 개항과 한일병합을 거치면서 인구 10만 명이 넘는 무역항으로

거듭난다.

 

일본은 조선 강점 이후 쌀과 자원을 수탈해가는 창구로 군산을 선택했다.

군산 앞 바다는 미곡과 광물을 실어가는 일본 선박으로 항상 북적거렸다.

 

항만과 도시가 형성되면서 군산에는 신작로가 나고 일본식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군산에선 아직도 100여 년 전의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

 

1899년 개항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생겨난 건축물이 도심 곳곳에 자리한다.

일제에 의해 항만이 축조되고 도시가 형성된 탓에 20세기 초반의 역사가 빛바랜 풍경으로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신사(神社)는 허물어지고 마쓰리(축제)는 사라졌지만, 인공미가 두드러진 일본식 목조 기와집과 관청 건물은

상당수가 원형 그대로 시내 곳곳에 산재한다.

 

 

 

 

옛 군산세관은 군산 역사 기행의 출발지로 삼기에 적합하다.

1908년 완공 이후 85년 동안 세관 건물로 사용됐다.

 

대한제국은 군산항을 개방한 광무 3년에 인천해관 관할로 군산해관을 설치한다.

이후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단층 건물을 마련했는데,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로부터 가져온 붉은 벽돌과 건축

자재로 지었다.

 

구(舊) 세관은 규모는 작지만 한국은행, 서울역과 같은 모양으로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외벽은 화강암 밖으로 붉은 벽돌을 쌓았고, 내부는 회벽을 칠하고 목조로 건축했다.

 

지붕은 기와 모양의 동판과 슬레이트로 올리고 3개의 첨탑을 세웠다

구 세관은 군산 개항 이후 일본 선박의 왕래가 급증했음을 말해준다.

 

대한제국은 일제의 요청에 따라 1905년 군산 포구에 최초의 축항(築港) 공사를 시행한다.

불규칙한 해안을 매립해 일직선으로 만들고, 이른바 '뜬다리 부두(부잔교)'를 설치해 군산 내항(內港)을 조성했다.

 

'뜬다리 부두'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이 발달한 군산 포구에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부교 형태로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다.

 

현재, 내항 일대는 '쌀 곳간'을 의미하는 장미동(藏米洞)으로 불린다.

일제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와 충청도 일대에서 수탈한 미곡을 저장했던 부두 창고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을 촬영한 흑백사진에는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쌀가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제3차 축항공사 기간에 만들어진 내항 창고 3동에는 쌀 25만 가마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제는 원활한 쌀 수송을 위해 군산과 전주 사이에 전국 최초의 포장도로를 개설하고, 익산에서 군산항까지 철도를 부설했다.

1930년대 호남 일원에서 생산된 쌀의 절반 이상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식민지 시절, 군산에는 쌀과 자원이 넘쳐났지만 조선 서민들은 풍요 속 빈곤을 겪어야 했다.

대다수가 농토를 잃고 소작농과 부두 노동자로 궁핍한 삶을 이어갔다.

 

나가사키십팔(長崎十八)은행,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당시 일제의 극심한 수탈에 관한 살아 있는 기록이다.

구 세관에서 지척인 나가사키십팔은행은 군산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갈취하는 자금줄 역할을

했다.

 

일본인들은 은행에서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군산 농민들에게 토지를 담보로 고리대금을 일삼았다.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한 결과, 군산 지역엔 일본인 농장 수십 개가 생겨났다.

 

1923년 신축된 조선은행 군산지점 역시 식민지 수탈의 거점으로 기능했다.

일본 상인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해 군산과 강경의 상권을 장악하는 데 초석을 놓았다.

 

조선은행은 독일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석공들이 동원돼 지어졌다. 2층 건물이지만 실제 높이는 4~5층 건물에 버금간다.

당시 전북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면서 유흥업소로 사용되다가 방치돼

지금은 흉물스러운 외관만 남아 있다.

 

 

 

해방 이후 도로가 확장되면서 사라졌지만 조선은행 앞에는 미두장(米豆場) 건물이 위치했다.

미두장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등장하는 쌀 선물거래소로, 일제는 이를 통해 전북 일원의 쌀값을 통제하면서 미곡 유통을

사실상 독점했다. 수많은 조선인 지주들이 이곳에서 가산을 탕진했다고 전해진다.

 

일제 수탈사 기행에서 군산 개정동 발산리의 시마타니(島谷) 금고는 빼놓지 말아야 할 대상이다.

일본 주조업자 출신으로 술의 원료인 쌀을 찾아 군산에 진출한 시마타니 야소야가 제작한 금고 용도의 3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도자기, 서화, 불상 등 보물급 골동품과 석등, 석탑을 전국 각지에서 불법 수집해 금고 안팎에 보관했다.

도난 방지용으로 창문에 굵은 쇠창살과 강철 덧문을 설치하고, 입구에는 미국에서 수입한 대형 철제 금고문을 달았다.

시마타니 금고는 쌀 수탈과 함께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증언해준다.

 

 

 

 

3. 철새가 날아드는 늦가을 여행지

 

군산은 북쪽으로 금강, 남쪽으로 만경강이 도시를 감싸고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김제, 만경평야와 잇닿아 있고 고군산군도가 지척이다.

 

강과 바다와 평야가 어우러진 항구로 20세기 초 건축물이 시내 곳곳에 잔존해 시간이 더디 가는 느낌이다.

근대 건축물 기행과 철새 탐조에 알맞은 늦가을 여행지이다

 

 

 

 

◆금강 철새 조망대

 

철새가 태풍, 난기류를 뚫고 수천㎞를 여행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금강 철새 조망대를 찾아가볼 일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탐조 시설로 철새에 관한 흥미롭고 깊이 있는 정보를 갖춰 놓았다.

 

금강 철새 조망대는 2003년 10월 문을 열었다.

금강하굿둑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자락에 지하 1층, 지상 11층 규모로 세워졌다.

금강 하구는 갈대가 무성하고 강 중심에 모래톱이 형성돼 있어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적합하다.

 

또한 드넓은 나포십자들과 갯벌엔 철새의 먹잇감이 풍부해 장거리 비행을 위한 영양 공급원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매년 늦가을이면 국제적인 희귀 조류인 가창오리 떼 수십만 마리가 찾아와 겨울을 지낸다.

쇠백로, 해오라기 등 여름철새와 도요새, 물떼새 등 나그네새들도 금강 하구를 중간기착지로 삼아 북상하거나 남하한다.

 

 

 

가창오리의 군무를 비롯해 철새들의 날갯짓은 통유리가 설치된 11층 조망대에서 볼 수 있다.

해질녘 금강의 금빛 물살을 차고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떼의 군무는 감동적이라고 한다.

 

고배율 망원경이 수㎞ 떨어진 곳까지 시야를 확장시켜주는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부화체험관과 철새신체탐험관은 철새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시설이다.

 

알 모양의 부화체험관에선 60여 종의 새들이 알에서 깨어나 자라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철새신체탐험관은 가창오리의 모습을 본떠 외형을 꾸몄다. 거대한 가창오리 모형 안으로 들어가 새들의 소화, 호흡기관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철새에게 근접해 관찰할 수 있는 탐조회랑, 수족관과 곤충디오라마관 등 다양한 시설이 운영된다.

특히 식물생태관에는 자생식물과 아열대식물 등 170여 종의 식물이 있고 인조동굴, 소형폭포, 연못 등이 설치돼 있다.

 

한편, 제4회 군산 세계철새축제가 11월 21~25일 금강 철새 조망대를 비롯한 금강호 일원에서 펼쳐진다.

부화체험, 탐조투어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마련된다.

 

 

 

◆채만식 문학관

 

 

 

탁류, 치숙, 레디메이드인생, 태평천하 등 일제 식민지 시절의 고단함과 부조리를 풍자적인 소설과 희곡으로 그려낸

백릉(白菱) 채만식(1902~1950)을 기리는 문학관이다.

 

군산 임피면에서 태어나 자란 백릉의 치열했던 삶의 여정을 시대별로 소개하고 그의 출판물과 육필원고, 사진, 관련 논문 등을

전시해 놓았다. 백릉은 군산을 배경으로 식민지 시대의 혼탁한 세태에 휩쓸린 한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 '탁류(濁流)'로 남겼다

 

 

 

◆은파시민공원

 

 

 

햇살이 호수 물결에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운 공원이다.

본래 '미제방죽'으로 불리었다. 지금의 이름은 사랑의 빛을 뜻하는 은(銀), 풍요의 물을 나타내는 파(波)에서 유래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이 370m의 물빛다리는 중앙에 주탑을 세운 현수교로 지난해 8월 완공됐다.

야간 경관 조명은 일몰 30분 이후부터 23시까지(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21시) 불을 밝힌다.

 

휴일과 행사가 있는 날에는 야간 경관 조명 이외에 서치라이트와 터널분수가 더해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음악분수는 3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된다.

11월은 매주 금, 토요일 19시, 20시에 각각 20~30분간 빛과 물줄기가 어우러진다

 

 

◆히로쓰 가옥 군산 신흥동에 위치한 황토색 담장이 인상적인 일본식 목조 가옥이다.

군산의 일본인 포목상 히로쓰(廣津)가 근세 일본 사무라이 주택 양식으로 2층 본채 옆에 금고건물과 단층의 객실을 짓고

그 사이에 일본식 정원을 꾸몄다.

 

현관 안쪽 중복도 양편에 온돌방과 부엌, 식당, 화장실이 배치돼 있다.

또 온돌방 옆 밖으로 면한 편복도 중간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제분 관사로 이용됐다.

 

 

◆구마모토 별장 군산 지역 최대의 농장주였던 구마모토(熊本)가 벼 수확기에 머물던 곳이다.

서양과 일본, 한국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수입 자재와 백두산 전나무를 이용해 지어졌다.

 

응접실 벽난로, 구한말 황실에서 쓰던 가구들이 남아 있다. 토지 브로커 출신의 구마모토는 군산 일대에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방대한 농장을 운영하며 수천 세대의 소작농을 두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인 쌍천(雙泉) 이영춘(李永春) 박사(1903~1980)와 그 후손들이 생활해오고 있다.

군산 개정동 군산간호대학 내에 위치해 있다.

 

 

 

 

◆군산 내항(內港) 일제가 조선의 쌀과 자원 반출을 위해 조성한 항만이다.

1980년대 이후 상업항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 현재 관용선과 대학 실습선, 연안 유람선 터미널로 이용되고 있다.

 

1999년 군산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백년광장과 연계된 역사문화공간으로 뜬다리 부두(부잔교)를 볼 수 있다.

가을에는 망둥이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모여든다.

 

 

 

 

◆고군산군도

고군산군도는 선유도, 비안도, 명도 등 군산 남서쪽 해상의 섬 무리(群島)를 말한다.

예로부터 선유8경이라 하여 수려한 경관으로 정평이 났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신시도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국제해양관광단지 조성이 추진 중이다. 청정해역이자 바다낚시 명소로 알려져 있다.

멸종위기종인 검은머리물떼새를 비롯해 황조롱이, 바다직박구리, 중부리도요, 흰날개해오라기, 검은머리멧새 등 희귀 조류가 관찰된다.

 

 

 

◆군산 연안여객선터미널

군산 외항에 국제여객선터미널(군산-칭다오)과 나란히 위치해 있다.

선유도, 어청도, 신시도, 비안도, 명도, 개야도 등으로 고속선이 운항된다.

운항 횟수는 계절과 요일에 따라 다르며, 운임은 1만~2만 원대이다.

소요시간은 선유도(장자도, 무녀도, 대장도) 1시간 40분, 비안도 2시간, 어청도 3시간이다. 063-472-2727

*군산시청 관광진흥과 063-450-6598 http://tour.gunsan.go.kr

[출처 -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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