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의 후궁 극렬히 반대한 혜경궁 홍씨 실록에는....
MBC 월화 대하사극 ''이산''62회에서 혜빈(견미리)은 도화서 화원인 송연(한지민)을 정조 이산(이서진)의 후궁으로
들이는 것에 극렬히 반대했다.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의 아들로 태어난 영조(이순재)가 어머니 핏줄로만 보면 역관보다 미천한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사대부의 명분론에 위협을 받기도 했으며 평생을 출생에 대한 열등감에 시딜리던 것을 지켜봤던
그녀이기에 천한 아이 몸에서 원손을 잉태하게 할 수 없다는 의지가 확고했던 탓이다.
때문에 이미 왕이 선택한 승은 후궁임에도 혜빈은 송연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혜경궁 홍씨가 승은 후궁이었던 의빈 성씨를 반대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이란 나라의 체제 안에서 왕이 선택한 승은 후궁을 왕실 웃어른들이 개입해 막고 나서는 예는 없다.
의빈 성씨는 정조의 3번째 후궁이자 정조의 유일한 승은 후궁이었다.
정조가 효의왕후(박은혜)와의 사이에서 14년이 넘도록 후사를 보지 못하자 조정과 왕실이 후궁을 들일 것을 권유했고 가장
먼저 홍국영이 자신의 누이를 후궁으로 들였지만 1년 만에 병사, 다음으로 들어온 후궁이 판관 윤창윤의 딸 화빈 윤씨였다.
정조는 원손을 보기 위해 화빈 윤씨의 처소를 자주 드나들던 차에 윤씨의 시중을 들던 나인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녀가 바로 후에 의빈 성씨가 되는 성송연이다.
결국 정조의 첫 아들은 의빈 성씨의 몸에서 태어나게 됐고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왕자의 탄생이기에 이를 기념하는
대규모 별시가 실시되기도 했다.
의빈 성씨는 집안이 한미하고, 당파가 없던 까닭에 아들을 낳고 3개월 후 왕자의 세자책봉이 거론되면서 정3품 소용으로, 다시
3개월이 지난 이듬해 2월 정1품 의빈으로 책봉됐다.
월화드라마 ‘이산’에서도 혜빈의 반대로 인해 송연이 승은을 입고도 오래도록 특별상궁의 지위에 머무는 것으로 그려질 예정인데
실제 역사에선 임신을 하지 않은 궁인을 후궁으로 책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오히려 정조였다.
당쟁에서 의빈 성씨를 보호하기 위한 처사로 보는 해석이 많다. 또 의빈 성씨는 ‘이산’에서처럼 정비인 효의왕후와도 사이가
깊었으며 혜경궁 홍씨 등 왕실 어른들에게도 두루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왕자를 낳아 후사 문제에 대한 왕실의 근심을 덜어주었을 뿐 아니라 타고난 성품도 곱고 욕심이
없었던 의빈 성씨를 좋지않게 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산’의 경우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에 극적 갈등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혜빈이 악역을 맡게 된
듯하다
[출처-[뉴스엔 조은영 기자]
홍국영이 키운 완풍군, 실록에는?
완풍군. 출생년도도 정확하지 않은 조선 후기 한 왕자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홍국영은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박은혜 분)가 후사를 잇지 못하자 완풍군을 세자로 앉혀 안정적 권력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속셈이다.
완풍군의 이름은 담(湛), 본명은 준(濬)이다.
죽은 정조의 후궁 원빈(지성원 분)의 양자로 들이는 형식을 택했다.
왕실과 자신을 동격시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조실록은 "역적 홍국영이 양육하여 완풍으로 작호를 지었는데, 바로 은밀히 나라의 근본을 옮기려는 계책이었다"고 기록했다.
정조, 의빈 성씨와 마찬가지로 이담의 죽음 역시 뒤끝을 남겼다.
이인은 담의 아버지. 드라마 '이산'은 이 완풍군의 삶을 어떻게 브라운관에 되살려 낼지 주목된다.
[출처-머니투데이 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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