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들/드라마 이산 역사속인물

역사속 문효세자, 의빈 성씨의 미스터리한 죽음 [2008/05/28]

이미피더 2009. 4. 28. 00:18

 

 

 

MBC 월화사극 ''이산'' 73회에서 정조 이산(이서진 분)과 송연(한지민 분)은 어린 문효세자(차재돌 분)를 갑작스럽게 홍역으로

잃는다.

 

설상가상 아들의 사망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송연은 그녀가 장결병(간암 혹은 간경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목숨을

잃더라도 뱃속의 용종만은 살리고자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등 강한 모성애를 드러냈다.

 

종영 3회를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송연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실제 역사에서 보면 당시 의빈 성씨와 그녀가 낳은 옹주, 문효세자의 연이은 죽음이 정조에게 상당한 심적 타격을 줬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집안이 한미하고, 당파가 없던 의빈 성씨는 여자문제에 지극히 담담했던 정조가 유일하게 마음에 둬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승은 후궁이었다.

 

원빈 홍씨를 비롯해 화빈 윤씨, 수빈 박씨 등 정조의 나머지 간택 후궁들은 모두 노론 일파 유력 가문의 딸들이었다.

실제 의빈 성씨는 성품이 곱고 욕심이 없었으며, 정조 자녀의 절반이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을 정도로 정조가 많은 애정을

쏟았다고 전해진다.

 

특정 당색이 없었던 의빈 성씨야말로 정조가 온전히 의지하고 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던 것이다.

의빈 성씨가 문효세자를 낳기 전까지 정식 첩지를 받지 않은 특별 상궁의 신분으로 머물렀던 것도 집안이 한미했던 탓도 있겠지만

임신을 하지않은 궁인을 후궁으로 책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정조가 당쟁에서 의빈 성씨를 보호하기 위한 처사로 보는 해석이 많다.

 

이후 의빈 성씨는 정조 등극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던 영의정 서명선의 간언으로 아들을 낳고 3개월 후 왕자의 세자책봉이 거론

되면서 정3품 소용으로, 다시 3개월이 지난 이듬해 2월 정1품 의빈으로 책봉됐다.

 

유독 자식복이 없었던 정조에게 의빈 성씨의 몸에서 첫 아들을 얻게 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왕자탄생을 기념하는

대규모 별시가 실시되고 이른 세자책봉 논의가 이뤄지는 등 문효세자는 정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아무 탈없이 잘 자라던 문효세자는 5살의 어린 나이에 갑자기 죽어버린다.

홍역에 걸렸다 완쾌돼가던 중 갑자기 병이 악화돼 사망한 것이다.

 

앞서 어린 옹주를 잃고 당시 임신 5개월의 몸이었던 의빈 성씨에게 연이은 자식들의 죽음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심적 고통 때문인지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의빈 성씨 마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정조는 “(의빈 성씨의)병이 이상하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더 이상 의탁할 곳이 없다’며 깊은 슬픔에 잠기고 20여일동안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여러 혼란이 빚어지자 많은 대신들이 정조에게 정사를 돌볼 것을 간청했다.

 

그러는 사이 정순왕후(김여진 분)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빈 성씨와 문효세자 이향, 역시 의빈의 딸인 옹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독살설을 제기하며 진짜 역적을 찾아내야 한다는 한글 교서를 내렸다.

 

당시 상황전개를 보면 정순왕후는 이들의 죽음과 관련해 사태의 모든 진전 상황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기막힌 예견 능력을 보였다.

때문에 정순왕후가 제기한 의문투성이 역모 사건에 대한 정조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고 정순왕후의 뜻과 달리 오히려 사태를

축소시키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항간에는 정순왕후가 이들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떠돌았다.

실록에도 의빈 성씨의 죽음에 대해 세간에 의혹이 많았다는 점이 기록돼있다.

[뉴스엔 조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