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와 함께/♥그동안 사진들

하린이의 주말나들이 38 - 진안 마이산 .....[2008/11/14]

이미피더 2009. 7. 25. 01:25

 

 

마이산에 가는길에 오수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아담한 공원이 있었다
오수 의견공원이란다...

 

 

 

아주 옛날옛적에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이마을에 살았었는데 충직하고 총명한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날 동네 잔치를 다녀오던 김개인이 술에 취해 오늘날 상리(上里)부근의 풀밭에 잠들었는데,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

불이 계속 번져오는데도 김개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위를 뒹굴어 불을 끄려 했다.

 

 

들불이 주인에게 닿지 않도록 여러차례 이런 짓을 반복한 끝에, 개는 죽고 말았으나 김개인을 살렸다고 한다.

김개인은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의 주검을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다고 한다.

나중에 이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라났다고 한다.

훗날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를 합하여 이 고장의 이름을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요일이라 단풍구경, 가을등산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진안 어느 방면에서나 눈에 띄는 마이산은 이름이 철에 따라서 네 가지란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 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 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다.


 

 금당사는 814년(신라경덕왕 13년)에 혜강대사가 지은 절이다. 이 절에는 목불 셋과 괘불이 있다.

 

옛날 이곳에서 수도하던 수도승의 생활은 신선과 같았고 부처님의 높은 도를 깨우친 분이었다고한다.

어느해 늦은 봄이었다. 매우 가뭄이 심하여 사람들은 금당사에서 수도하는 스님에게 찾아가 애원하였다.

 

스님은 정색을 하며 기우제를 드리자고 하고 밤이되자 스님은 호랑이 등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기우제 준비를 마치고 사흘을 기다리니 스님이 절의 뒷마당에 사람을 그리고 그 곳을 백자만 파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모두들 주저하였으나 스님의 말대로 파기 시작했고드디어 백자가되는 땅속에서 부처님이 그려진 한 폭의 괘불이 나왔다.

이 괘불을 절에 걸고 기우제를 올리자 기다리던 비가 오기 시작하엿다.

지금도 가뭄이 심할때면 금당사에서 괘불을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한다.


어느 날 스님의 제자 여럿이 스님의 도술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달걀을 개어 떡을 구워놓고 스님에게 살아있는 병아리를

만들어 보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경을 외며 조용히 꿇어 앉아 살아 있는 병아리로만들어 보이었다.

상좌들과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도술에 크게 탄복하여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이스님이 바로 공민왕때의 고승 나옹스님이다.

금당에서 북쪽으로 500m거리에는 나옹대사가 크게 대각을 얻었다는 고금당이 있다.

 

 

 

배가 너무 나오셨어요 ㅎㅎㅎ

 

 

 

가을단풍 배경이 너무 좋구나~

 

 

 

마이산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유명한 마이산 탑사가 있는 남쪽에서 오르는 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서 내려가는 코스.

마이산에는 조선시대 태조가 임실군의 성수산에서 돌아가다가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은수사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80여개의 돌탑을 거느린 탑사 등이 있다한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넓게 펼 쳐져 있는 말의 귀모양으로 생긴 두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 루고 있다.

동쪽에 솟아있는 숫마이봉은 667m이며, 서쪽에 솟아있는 암마이봉은 673m이다.

마이산은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관목과 침엽수, 활엽수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으며, 화암굴, 탑군, 금당사 등이 있다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 하던중 신의 계시를 받는다.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 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이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 상단부분에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고 한다.


위치와 모양이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

외줄탑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한 탑이다.

 

돌에도 암수가 있어 암수의 조화를 이뤄 쌓은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쌍의 탑이다.

 

 

 

 

 

레오가 탑사 꼭데기까지 올라왔다...

마침 장애인복지관에서 오신분들이 무거워서 힘들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업고 올려주셨다.

레오는 그저 신났다~ 그대 만났던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갑용처사는 남달리 어릴적부터 효성이 지극 했으며 같은 동내에서도 이 경의를 이길자가 없었다 한다.

어릴적부터 효성이 지극한 갑룡은 부모님이 자리에 누워 임종 하실 때 이 갑룡은 자기의 손가락을 조금 잘라 피를 먹이시어

약 석달간을 더 사시게 하셨다 한다.


16세때 부모님을 여의시고 부모님 묘소 옆에서 움막을 짖고 3년동안 시묘 살이를 하시다 인생의 삶과 죽음의 인생 허무무상을

탄식 하시다가 19세때 시묘 살이를 마치고 전국을 만행 하시면서 속세를 떠나셨다 한다.

 

외로움을 달래며 이산 저산 이절 저절에서도 자리 잡지 못하시고 결국 고향에서 농사나 지으며 인생을 살아야지 하며 전국을

누비다가 거창에서 장수로 임실 둔덕으로 넘어가실 무렵 어느 두 봉우리가 이 갑룡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가 1885년경 나이 25세 되던해 젊음을 이곳에 묻으라 하신다며 구도의 행각 끝에 수도에 들어갔다.

 

 

 

세속과는 완전 등진채 낮에는 돌을 날랐고 밤에는 기도 하다 자시에 돌탑을 하루에 한층씩 30여년동안 인간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108기의 탑을 쌓으면서 108 번뇌를 해탈 하고자 108개의 석탑을 구상 자연석을 탑촌으로 하나둘 올려 놓으면서

뭇 중생이 짖는 죄를 대신해 비는 기도로 일관 하며 탑을 완성될 동안에는 사람이면 고독을 느껴서라도 하산의 길을 떠나 세속에

묻혔을지모른다.


40세 중반에 고금당 굴사에 기도 갔다가 어느 여인과 음양 합일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같이 탑군에 와서 정수물을 뜨고

혼례식을 올렸다 한다.

그후 자식 3형제를두고 얼마안되 최씨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다시 50후반부터 혼자서 살았다고 한다.

자식 3형제중 생계가 어려워 아들이 없는 남원 어느 집에 양자로 보내고 차남 이 도생씨가 갑룡의 후에를 맞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탑군은 우주의 축소판이며,인간의 삶의 현장이라 하였다고 한다. 묘법연화경 15품에 나오는 연화의 세계임이오 하늘을 찌를듯한

기상이다. 항상 백 두루마기를 거치고 백의 민족의 얼을 배움의 터전으로 삶을 살았다고 한다.

95세때 일이다 이갑룡처사는 아무말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자 후손들은 관을짜고 초상을 치루는데 36시간만에(일일반)다시 일어나시며 죽음을 잘못 정 했다고 하여 다시 살아 났다가

97세때부터 단식에 들어가 일년동안 용궁의 물만을 마시며 몸속의 이세상의 사물의 이치를 씻어내고 있었다


아들은 뭐라도 드시고 기운을 차리기를 원했지만 갑룡은 절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 인간의 모든때를

씻고 몸속에 똥 오줌을 완전히 제거해서 깨끗한 마음과 몸으로 이 세상과 하직 하고 싶고 내몸이 정화가 되어야 이 세상에서

수도한 내가 조상을 찾아 갈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용두봉 산위에 자리를 정하시고 98세로 눈을 감으셨다.

 

 

 

점심도 거르고 부랴부랴 오르느라 지쳐서 힘들단다...배고프단다..

내려가는길에 메추리로 요기나 할꺼나?

 

 

 

 

 

 

이제 날씨가 쌀쌀해져서 주말나들이도 힘들것 같다.

레오와 하린이는 매주 주말여행을 기다렸는데...
 
 

 

 

2008년 가을하늘이 너무 좋은날에 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