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로하는 레크리에이션 치료. 그림1의 우측에 보이는 분이 Dr. Sussman 선생님으로, 미국 뇌성마비
학회장을 하셨고, 금년 9월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뇌성마비에 관한 강의를 하실 예정입니다. ⓒ김하용
뇌성마비어린이를 진료하는 소아 정형외과의사로서 느낀 점 몇 가지를 모아 보았습니다.
1) 뇌성마비라는 질병을 치료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2) 수술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
3) 보행이 불가능한 어린이의 치료라는 것은 어떤건가? (고관절 등)
먼저 뇌성마비라는 질병을 치료하는 원칙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늘상 그러듯이 소아정형외과는 방학 중에, 그것도 겨울 방학 중에 가장 바쁩니다.
학기 중의 진료라는 것은 응급 수술이 주가 되고, 외래에서는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으면 가급적 방학으로
스케줄을 잡아 주게 됩니다.
응급 수술이란 외상이나, 빨리 치료해야만 결과가 좋은 병들을 말합니다. 이런 것 중에는 감염(급성이나 만성 골수염), 고관절
탈구, 선천성 만곡족, 시기를 놓쳐 버린 선천성 질환들, 성장판을 이용한 키 맞추는 수술 같은 게 해당됩니다.
금년 겨울도 어김없이 매일 10여개의 수술이 잡혀있었고,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그러다 보면 1년에 써야할 휴가를 여름 철, 겨울철에 쓸 경황이 없어서 꼭 10일 이상 휴가가 남게 됩니다.
그래서 수술이 거의 정리된 이맘때쯤에 휴가를 몰아서 내게 됩니다.
휴가를 내서 방학 때가 되면 더 바쁜 아빠 때문에 심심해하는 아이들과 놀아 주려고 하면, 아이들은 이미 개학 준비에 바빠합니다. 그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주에 당일로 스키를 타러 다녀왔습니다.
집에 와서는 둘째와 셋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숙제가 밀렸다고 끙끙대고, 이번에 대학 들어간 첫째 아이는 그래도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합니다.
저는 스키를 잘 타지 못합니다. 초급자 코스를 겨우 내려오고, 중급자 코스는 그저 조심조심 기듯이 내려옵니다.
제가 스키를 배운 것은 미국에 연수를 갔을 때입니다.
병원에서 뇌성마비 어린이를 데리고 레크리에이션 치료(recreation therapy) 목적으로 스키장엘 갔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은데 미국에서는 하더군요(사진). 이 레크리에이션 치료를 슈라이너 병원에서는 참 중요하게 여기고 여러 가지 것들을 했었습니다. 마치 환우들의 클럽 활동 같은 거지요. 댄스, 승마, 태권도, 스키, 수영 등이 그 것들입니다.
암튼 늦게 배운 저지만 스키를 좋아하게 되었고, 저희 병원에 있는 보행 분석 검사실은 일년에 한번 가는 MT를 무주 스키장으로
갑니다. 저는 이번 주에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몸 상태도 좋지 않고 해서 스키를 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아이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뇌성마비 보행 분석에 관한 강의 자료들을 리뷰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미국 코네티컷 아동 병원 보행 분석실에 근무하는 실비아(Sylvia Ounpuu)의 강의록 “how to interpret the kinetics?”를 보다보니 이런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보행 분석을 통해 운동 형상학이나 역학자료를 얻으면,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추가 자료가 의사에게 제공된다.
어느 치료에 있어서와 같이, 최종 치료는 치료하는 의사의 철학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Joint kinematics and kinetics provide the clinician with additional information with which to make treatment decisions. As with any type of treatment, the ultimate decision depends on the philosophies of the treating physician.)”
의사들은 대체로 나름의 치료 철학이 있기는 합니다.
일정 수준의 공부를 하고 경험을 하였다는 전제 하에, 의사들은 어떤 치료, 특히 수술에 임할 때, 정확히 그리고 철저히 치료를
할 것인지, 아이를 편하게 치료할 것인지 살핍니다.
이 때 특히 가정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지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 것이 학업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몇 달씩 병원에 잡아 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뇌성마비라는 질병은 남들 보다 조금 불편한 병입니다.
물론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좀 절어 보이고, 말이 좀 어눌할 수 있고, 근육 강직으로 통증이 좀 발생 할 수 있고, 동반된
질환으로 경기나 언어 장애, 시력 장애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하면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고, 그 것도 어려울 수 있기는 하지만, 결국 조금 불편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병이 될 수도 있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병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로써 가슴 아픈 병일 수도 있습니다.
이 어린이들을 위해서 결국에는 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부터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치료를 한다면, 각 개인에 맞추어 치료의 방향을 잡고, 그 방향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각 단계 별
결정의 중심에는 환우와 그 가족의 철학이 가장 중심에 있습니다.
의사의 철학이 아니고, 환우와 그 가족이 이 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가장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제 외래에 아주 잘 걷지만, 조금 절어 보이는 강직형 양측 마비 어린이가 왔습니다.
간단한 수술이면 거의 절지 않고 잘 다닐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아이와 어머님과 치료 및 그 결과에 대하여 충분히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머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만약 수술이 잘 못 되었을 경우 예상되는 결과”였습니다.
당신께서 아이를 너무 사랑하셔서 아이가 조금 절어 보이는 것(지금의 장애)은 당신의 아이에 대한 사랑에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신은 수술이 잘 못되어서 아이를 잃거나 더 심한 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죄책감에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크는 것을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재작년인가 제가 수술하였던 어린이 한 명이 명을 달리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네 살 무렵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 때
뇌 손상을 입었습니다. 심한 사지 마비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경기나 언어 등의 소통 문제가 함께 있었습니다.
12살 정도 되었는데, 한 쪽 고관절이 마비성 탈구가 되면서 자세가 비뚤어지고, 허리도 휘기 시작하면서 휠체어에 태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고관절 수술을 하였고, 수술 후 몇 번의 경기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안정 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얼마 되지 않아 경기 도중에 흡인성 폐렴이 되어 응급실로 실려왔습니다.
흡인성 폐렴이란 음식물의 찌꺼기 같은 이물이 기도에 들어가 이차적으로 생기는 폐렴을 말하며, 치사율이 매우 높습니다.
얼마 후 이 어린이는 명을 달리 하였고, 어머님이 외래를 방문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다리를 고치고 하늘나라에 갔으니, 그 곳에서는 자유롭게 잘 뛰어 놀 거예요”라고 하시며 밝은 표정으로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두 어머님 모두 정말 아이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들은 아이에 대하여 스스로의 철학이 뚜렷하셨고, 이에 입각하여
치료의 방향을 잡았고, 그 방향을 이루기 위해서 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우리의 부모님들께서는 두 어머니의 중간 입장 정도에 계실 것 같고, 항시 어느 것이 우리 아이를 위하는 길인지 저울질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두 입장은 강요할 수도, 강요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뇌성마비라는 질병을 치료하는 원칙은 환우와 그 가정의 삶을 바라보는
방법(철학)에 입각하여 치료의 방향을 잡고, 그 방향을 만족시켜줄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김하용 (pedo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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