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왕후(孝懿王后)
1753(영조 29)∼1821(순조 21).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비(妃).
청풍김씨(淸風金氏)로 아버지는 좌참찬·증영의정 시묵(時默)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증찬성 상언(商彦)의 딸이다. 한성부 가회방(嘉會坊) 사제(私第)에서 출생하였다.
1762년(영조 38) 세손빈(世孫嬪)으로 책봉되어 어의동(於義洞) 본궁(本宮)에서 가례(嘉禮)를 올렸고, 1776년 영조가 죽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진봉(進封)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를 지성으로 모시니 궁중에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우애가 극진하여 화완옹주(和緩翁主)가 그를 몹시 괴롭혔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특히 청연(淸衍)·청선(淸璿)
두 군주(郡主)와는 더욱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청선군주의 상을 당하였을 때는 스스로 슬픔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비통해
하였고, 그 자녀들을 자기 자식처럼 보살펴 주었다.
성품이 개결(介潔)하고 사정에 흐르지 않아서 사가(私家)에 내리는 은택을 매우 경계하여 수진궁(壽進宮)과 어의궁(於義宮)에
쓰고 남는 재물이 있어도 궁화(宮貨)는 공물이라 하여 사사로이 사가에 물화를 내린 적이 없었다.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창경궁 자경전(慈慶殿)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일생을 검소하게 보냈으며, 생전에 여러 차례 존호(尊號)가 올려졌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휘호(徽號)는 예경자수(睿敬慈粹)이고, 시호는 효의(孝懿)이다.
능은 경기도 화성의 건릉(健陵)이다.
의빈성씨(宜嬪成氏)
?∼1786(정조 10).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후궁.
미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 궁중에 들어왔다.
정조의 눈에 들어 1782년(정조 6) 소용(昭容)으로 봉해지고, 이듬해 문효세자를 낳아 세자책봉과 동시에 의빈으로 진봉되었다.
왕손이 귀한 왕가에서 세자를 낳아 왕가를 번창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궁중상하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왕가의 기대도 보람없이 문효세자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다.
아들의 죽음을 상심하여 나날을 보내다가 1786년 딸을 낳은 뒤 산후가 좋지 못하여 곧 죽었다.
옹주도 일찍 죽어서 그 후손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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