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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평 아파트 장만이 가장 보람 있었어요” ..... [2008/04/17]

이미피더 2009. 4. 8. 23:21

 

 

 

수급비 아끼고 아껴서 아파트 보증금 마련
주택 편의시설 개조는 자립생활센터가 지원


에이블뉴스는 장애인시설의 비리 운영과 인권 침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고발된 이후에 주목한다.

비리 시설에서 살아왔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또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되고 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은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설에서 나오거나, 집에서 독립하려면 가장 먼저 살 곳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과 노동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에게 거액의 주택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는 현실성 있는 장애인 주택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에이블뉴스는 제28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주거권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해 보는 특집을 진행한다.

 

 

[내집 마련 수난기]①광주광역시 오치동 우선미씨

나는 현재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12평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내가 집주인이고 혼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말을 하면 10명 중 9명은 믿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몸으로 혼자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나는 지금 분명히 혼자서 나만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실수로 하루아침에 오고 갈 때가 없게 되었고, 단지 먹고사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활시설로 들어가게 되었고,

20년을 방안에서만 생활하면서 그렇게 살다가 죽겠구나 했는데 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해 자립생활을 알게 되었고,

6년전에 사회로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립생활이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 8년 전 어느 날 생활시설에서 20년을 넘게 살 던 오빠가 자립생활을 선택해 사회로

나간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오빠는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고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라서 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며칠 뒤 시설을 떠나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책임을 지는 것은 저런 게 아닌데”라고 솔직히 오빠를

비웃었다.

 

저렇게 심한 장애로 어떻게 사회에서 살 수 있다고 생활시설을 떠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며칠이 안 되어 분명 다시 되돌아

것인데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자립생활이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고 시설에서 살다 시설에서 죽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자립

생활프로그램에도 그냥 별 관심이 없이 참여했다.

 

많은 충격과 걱정과 염려 속에 자립생활에 도전했던 오빠! 한 달도 못 버티고 시설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의 예상은

빗나갔고, 1년이 넘도록 지역사회에서 잘 살고 있으며 자립생활을 포기하고 살았던 나에게 작은 꿈을 갖게 해 주었다.

 

자립생활 체험홈 방문하고 큰 충격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은 우리이웃 자립생활 체험홈을 방문하던 날이었다.

그곳 시설은 리모컨 조작으로 모든 게 가능했다.

 

전등을 켜고 끄는 것, 현관문 열고 닫는 것, 턱이 없어 실내에서도 휠체어를 탈 수 있는 환경에 너무 놀랐다.

세상에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도 있구나. 이런 환경이라면 자립생활에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그날

이후 욕심을 내어 자립생활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다.

 

자립생활 기술훈련(요리실습)을 하기로 하던 날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장애인은 이동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약속도 취소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도 못 가게 될까봐 걱정 했는데

다행이 요리실습을 하게 되었고, 내 생애에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보통의 여자들에게는 평범한 일이 나에게는 생소한 체험으로 자립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자립생활프로그램을 거치고, 자립생활 숙박체험 후 생활시설을 떠나 우리이웃 체험 홈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30년 넘게 타인에 의한 삶을 살다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동사무소업무는 절차가 너무 복잡했고, 활동보조서비스 활용방법, 자원봉사자와의 대인관계, 관공서, 은행업무, 가계부 기록

등은 어렵기도 했지만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 나의 활동보조인을 직접 내가 면접할 때는 마치 내가 높은 지위에 오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체험 홈을 떠나 내가 살 공간(영구임대아파트)을 마련하기 위해서 임대보증금을 마련해야하기 때문에 절약해서 생활을 해야 했다.

 

수급비에서 체험 홈 생활비 15만원과 약간의 용돈을 빼고는 모두 저금을 하면서 알뜰하게 살았다.

수급비 절약해서 임대아파트 장만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신청했던 임대아파트 입주 통보서를 받던 날! 나는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고 꿈만 같아서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하지만 비장애인 기준에 의해서 만들어진 아파트라서 입구 턱부터 개조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다행히 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일찻집 수익금으로 주택개조를 지원해 주어서 쉽게 해결되었지만 주택개조가 자립

생활센터 수익사업으로 해결 할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주택공사에서 개조를 허락하는 조건이 이사 갈 때는 원상복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서 이런 문제점도 제도적으로 풀어야

하는 해결 과제인 것 같다.

 

주택개조를 끝내고 살림장만을 했다.   싸게 파는 가구점을 찾아서 장롱을 구입하고 예쁜 화장대를 고르고, 내 마음에 드는

침대도 골라서 나만의 공간을 나의 취향대로 꾸몄다.

 

마냥 기쁘고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워졌다.

 

내 마음대로 선택했다고 야단맞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아무도 야단 칠 사람이 없는데도….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다. 이 공간이 바로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계속 눈물이 나왔다.

 

속상하고 억울해서 울었던 기억은 많이 있었는데 기뻐서 울었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슬퍼서도 울지만 기뻐도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가족들의 도움 한 번 받지 않고 내 힘으로 12평 임대아파트지만 스스로 마련했다는 게 나의 삶에서 가장 보람된 일인 것 같다.

기뻤던 것은 생활시설에서 사회로 나오니 어머니와 형제들이 새삼 나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과 어머니께서 나를 짐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유스런 나의 삶에 순간순간 스치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사는 모습이 꿈이면 어떻게 하나?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시설 속에서

여전히 옛날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을 것만 같아 겁이 나고 무서워질 때도 있다. 때로는 힘들지만 이제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하루하루 행복하고 감사하다.

 

 

 

 


"꼭 한번 자립생활에 도전해 보라!"

 

자립생활의 과정은 힘들고 어렵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자립생활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후배 중증장애인들에게 “꼭 한번 자립생활에 도전해 보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자립생활은 모든 장애인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행복의 조건이며 복지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자립생활은 평범한 일상생활이고 현실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듯이….

아무런 꿈도 가질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꿈을 갖게 해 주고 삶 자체를 바꿔주는 것이 자립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사회 자립생활하기 위해서는 주택개조가 필수이기 때문에 장애인 주택개조에

대한 지원이 민간차원이 아닌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보내주신 우선미(37·뇌병변장애 1급)씨는 현재 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에이블뉴스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제28회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 ‘나의 내 집 마련 수난기’를 공모하고 있습니다.
원고료 10만원. ablenews@ablenews.co.kr
[출처] 에이블뉴스, 기고/우선미 ( need815@hanmail.net ) ]

 

 


Sarah Mclachan - Ang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