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우시장 찾아다닌 10년 제작스토리[워낭소리 신드롬①]
'원래 방송용, 방송사에서 퇴짜맞고 우여곡절끝에 7개 스크린 얻어 개봉'
지난달 15일 개봉 첫 날 단 7개의 스크린으로 14만 관객을 불러 모은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제작 스튜디오 느림보)의
힘은 관객들의 입소문도 있겠지만 10년 만에 완성시킨 이충렬 감독의 끈질긴 설득과 노력에 있었다.
‘워낭소리’의 제작과정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흔 된 늙은 소의 걸음처럼 느렸지만 우직하고 진득했다.
영화를 만든 이충렬 감독은 1990년대 외주 제작사에서 다큐를 비롯해 어린이와 노인, 건강 프로그램 등을 제작해오던 PD출신
감독이다.
그러다 이 감독은 1999년 IMF 당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대변해 줄 수 있는’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고자 했던 것이 ‘워낭소리’의 태동이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이 감독은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소를 키우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됐고 지리산, 진도, 남해, 함평 등
우시장이 있는 곳과 계단식 논이 있는 마을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햇빛과 풍광이 좋았던 한 지리산 마을을 찾았지만 소가 이미 수명을 다해 허탕을 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끈질긴 기다림과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끝에 그동안 PD로서 쌓아온 네트워크를 이용해 ‘워낭소리’ 주인공인 경북
봉화군의 최원균, 이삼순 노부부를 2005년 봄에 만날 수 있었다.
늙은 소 한 마리에 의지하며 논과 밭을 일구는 두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 감독은 '이거다 싶었다.
영화와 촬영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었고, 대신 영양에서 고교선생님이었던
자제분을 찾아 촬영을 허락받았다. 촬영은 40살 된 그 늙은 소가 죽을때까지로 했다.
하지만 촬영은 쉽지 않았다.
여든 된 두 노부부가 처음에는 '사진 촬영을 하는 것으로 오해했고 촬영용 카메라를 들이대자 움직임을 아예 멈추셨던 것.
이 감독은 “1999년 IMF 시절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아버지를 생각하다보니 제가 또 시골 출신이고 자연스럽게 소와 함께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찾게 됐다”면서 “수소문 끝에
영화에 담을 두 노부부를 찾았는데 사진 찍는 것인 줄 알고 계셨는지 카메라를 대면 당황해 하셨다.
지켜보고 있다 기다리길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을 곤란하게 만든 건 또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소와의 관계에 가족처럼 들어가길 6개월. 두 노부부의 삶에 동화돼야 했기에 이 감독은 수십 번
찾아가 말벗도 하고 함께 어려운 일도 하고 한 식구가 됐어야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잠을 같이 자지 않고 밥도 같이 먹는 걸 자제했다고 한다.
두분의 생활을 훼손하고 싶지 않고, 그래야 다큐멘터리의 장점인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귀가 좋지 않으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터뷰 촬영이 힘들었고 인터뷰가 처음에는 안돼서 고생 좀 했다”고 전했다.
3년간의 촬영은 끝없는 기다림이었다. 다가가면 동작을 멈춰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찍기 위해 기다렸고 또 기다렸다.
이내 움직이시면 그 동선을 쫓아가 한 컷을 담고 기다리다 또 한 컷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 감독이 바뀐 것도 여러 번. 이 감독은 없는 제작비에 중간 중간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도 했고 노부부께서 전화가
오시면 카메라를 들고 혼자 쫓아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어렵게 어렵게 촬영을 끝낸 것은 지난 2007년 봄. 1999년 IMF 직후 처음 구상하고 기획 5년, 촬영 3년, 도합 10년 끝에
완성됐지만 이 감독은 두 노부부에게 혹시라도 누가 될 수 있는 여지의 촬영 장면을 빼려 고민했고 편집 기간만 1년 6개월이나
걸렸다.
오랜 기간 편집을 끝냈지만 개봉이라는 난관이 다가왔다.
‘워낭소리’는 당초 방송용으로 기획됐으나 방송사에서 퇴짜를 맞고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스튜디오 느림보'의 고영재 프로
듀서와 배급사인 인디스토리를 만나 7개관에서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게 됐다.
‘워낭소리’는 6일 현재 51개 상영관에서 흥행 질주를 하고 있다. 씨네큐브 등 일부 독립영화 상영관들은 장기 상영에 돌입했고,
지난 2007년 아일랜드 음악영화 ‘원스’가 기록한 독립영화 국내 최고 기록인 22만 관객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감독은 영화 흥행과 관련해 “동물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것이 관객들에게 부담감 없이 다가간 것 같다”면서 “그리움과 향수 등
마음과 감정이라는 부분을 자극시켜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낭소리’와 ‘집으로’, 무엇이 닮았나 [워낭소리 신드롬②]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감독 이충렬)의 흥행 열풍이 거세다.
개봉 22일만인 5일 벌써 14만명(배급사 인디스토리 기준)을 넘는 전국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당시 7개의 스크린에서부터 현재 53개관으로 늘어나기까지 일궈낸 쾌거다.
‘워낭소리’를 두고 많은 관객들은 지난 2002년 4월 5일에 개봉한 영화 ‘집으로’(감독 이정향)를 떠올린다.
느린 걸음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고, 농촌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으면서 그안의 고향과 정을
일깨운다.
기역자로 꼬부라진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습, 논과 밭을 평생 곁에 두고 가꾸며 살아온 삶의 여정들, 무심한 자식들, 인생을
보여주듯 굳은살과 주름이 빼곡히 박힌 진흙 때 묻은 손과 발 등 두 영화가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삶의 의미는 바쁘게 돌아 가는
일상에 찌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워낭소리’가 여든의 노부부와 30년간 동고동락한 마흔 살이 된 늙은 소와의 우정과 삶을 그렸다면,
‘집으로’는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 집에 맡겨진 손자(유승호)와 말을 못하는 할머니의 소통과 가족의 정(情)에 무게를
실었다.
독립영화로 최고 흥행 신기록을 세운 ‘워낭소리’는 ‘집으로’와 흥행 코드가 비슷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대진운도 좋았다.
‘워낭소리’는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와 ‘룰라’와, ‘집으로’가 일본 영화 ‘배틀 로얄’과 ‘블레이드2’ ‘E.T’ 등과 맞붙었지만 개봉
당시 비슷한 콘셉트의 경쟁 한국영화 개봉작이 없었다는 게 컸다.
흥행 추이도 닮은꼴이다. ‘워낭소리’가 7개관에서 5일 현재 51개관으로 상영관을 늘리며 장기상영에 돌입, 관객들의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평일 저녁 프라임 시간대도 ‘워낭소리’는 매진 상태다.
‘집으로’ 또한 개봉 첫 날 전국 24개관으로 시작해 2002년 7월 1일 상영이 종료될 때까지 약 80~90여개 관에서 상영됐다.
‘집으로’의 첫 날 관객 동원은 4만 8000여 명(서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영화 모두 상영관이 점차 늘며 장기 상영 상태에 들어갔다.
이는 관객들의 입소문 역할이 크게 자리했다.
‘집으로’는 개봉 4주차에 접어든 4월 30일 100개관으로 정점을 찍었다.
3개월간 장기 상영에 들어갔던 ‘집으로’는 총 누적 관객 수 395만 8000여 명(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기준)을 기록했다.
단 '워낭소리'는 스크린을 100개 이상으로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배급사인 인디스토리에 따르면 '워낭소리'를 디지털로 촬영한 탓에 기존의 필름 영사기가 아닌 디지털 프로젝터를 이용해 상영
할 수 있는 상영관이 많지 않기 때문.
CJ엔터테인먼트의 최민수 대리는 “개봉 한 달을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 장기 상영에 들어갔다는 점,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향수, 사람과 동물, 할아버지와 소, 할머니와 손자간의 관계에 얽힌 정,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스크린 수가
늘어났다는 점 등이 두 영화를 흥행으로 이끈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인디스토리 또한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한 호의적인 입소문과 전 연령층에서 감동을 줄 만한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는 점, 개봉
당시 비슷한 장르의 한국영화가 없었다는 점”을 닮은꼴로 꼽았다.
관객 울린 '워낭소리' 명장면 명대사[워낭소리 신드롬③]
2009년 초 충무로 최대의 화제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열풍이다.
전국 7개관으로 시작한 뒤 입소문을 타면서 10만 관객을 돌파하고 상영관이 50개 스크린까지 늘어난 이 작품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로 시종일관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다.
최노인과 소 '오랜 동반자'
'워낭소리'의 영어 제목은 '오랜 동반자(Old Partner)'다. 이 제목을 단 한 장면으로 웅변해 주는 신이 땔감을 짊어지고 함께
고개를 오르는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를 한 프레임에 잡은 장면이다.
소를 자가용처럼 이용하던 할아버지는 영화가 시작하고 처음으로 소가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 자신도 한아름의 땔감을 지게에
지고 불편한 걸음으로 고개를 오른다.
소가 거의 수명이 다하고 이제 달구지에 자신도 끌 수 없을만큼 노쇠했다는 것을 안 할아버지가 스스로 달구지에서 내려 절뚝
절뚝 걷는 것이다. 둘은 30년 넘게 마지막 눈 감는 날까지 매일매일 그들은 그렇게 동반자였다.
"노인네들 겨울 잘 보내라꼬 나무를 이레 해 놓고 떠났다 아임니꺼"
마지막 땔감을 나른 뒤 소는 일어나지 못한다. '방법이 없다'는 수의사의 선언으로 소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영화 내내 '소를 먹이다가 내가 죽을 지경'이라고 빨리 죽어버리라 호통치던 할머니도 '좀 더 살아서 같이 죽으면 좋았을 것'
이라고 혀를 내찬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 대사와 함께 소가 노부부를 위해 마지막 기력을 다해 날랐을 '최후의 선물'인 집을
두른 어마어마한 땔감이 스테디캠으로 쭉 펼쳐진다
'들리지 않는 워낭소리' 고뚜레와 워낭을 푸는 장면
추운 겨울날 주저앉은 소의 죽음이 가까워졌다. 숨을 거두기 전 할아버지는 소를 평생 옥죄었을 고뚜레와 워낭을 풀어준다.
평생 소를 구속했던 노동의 짐을 내려놓고 이제 편히 쉬라는 뜻이었을 게다.
이제 워낭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30년 넘게 오랜 파트너였던 동물과 인간이 서로를 연민하며 교감하는 명장면이다.
동반자가 가고난 뒤 처연한 할아버지의 눈빛, 엔딩
포크레인으로 30년을 매일 함께 한 동반자를 묻어버린 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소의 무덤 양쪽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다. 눈물도 흘리지 않고 아무 표정이 없다.
읍내 시장 막걸리집에서 '소가 죽으면 장사 지내줘야지. 내가 상주질할건데'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할아버지는 처연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할아버지의 이 눈빛은 소가 죽은 뒤 한층 더 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마지막 장면에 다시 한 번 오버랩된다.
마치 소가 죽으면 자신도 곧 죽을 것임을 아는 듯....
'미친소 물러가라' 시위앞을 지나는 할아버지 달구지와 소
할머니 성화로 머리가 아파 소달구지 끌고 읍내 병원에 가는 길. 할아버지와 달구지는 비오는 읍내 시장통길에 때마침 '미국소
수입을 반대하는' 마을 농민시위대 앞을 지난다.
조금 놀라 물끄러니 시위대를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소도 고개를 돌려 무심히 본다.
이들 눈에 시위대는 어떻게 보였을까. 관객들에게는 분명 마을 청장년의 시위보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달구지소가 훨씬
더 커보였다.
'낭패래' '웃어', 그리고 '안 팔아'
영화에서는 또 할아버지가 정말 싫어했던 할머니의 잔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딴은 감독이 원했을 법한 할머니의 인터뷰이자, 영화의 내레이션이다. 할머니는 소 죽는다고 남처럼 밭에 농약 안치고, 낱알
더 떨어진다고 벼베는 기계 안들여놓는 할아버지 때문에 영화 내내 '낭패래' '내 팔자래~'하고 푸념한다.
그래도 할머니는 "영감 죽으면, 내 혼자 어떻게 삼 둥"하며 눈쌀을 찌푸리면서도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소를 팔고 싶지 않다. 할머니는 다 죽어가는 '소 제발좀 팝시데이' 하고고 외치고, 추석때 귀성온 자식들까지
동원해 '소 팔아야 편히 쉬시죠'라고 하지만, 할아버는 "안 팔아"를 계속 외친다.
마지못해 소가 다 됐다고 해 우시장에 갔지만, 100만원도 안 쳐준다는 소장사꾼에 할아버지는 오백만원 달라며 고집한다.
'이런 소 고기도 못먹는다'는 빈정거림에 할아버지는 더 화가 난다. "안 팔아".
영정사진 하나 없어 노부부는 읍내 사진관에 들른다.
할아버지 독사진 찍을때 소와 평생을 찌든 할아버지가 표정이 펴지지 않자 옆에 있던 할머니는 '웃어'하고 다그치듯 '명령'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목소리가 웃겼는지, 아니면 할머니 명령을 따라서인지 씽긋 웃는다.
'워낭소리' 흥행의 이면…일반인 사생활 침해[워낭소리 신드롬④]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거두며 연초 충무로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의 평온한 삶이 침해받고 있어 또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워낭소리'의 배급사 인디스토리 측은 "영화에 대한 사랑이 큰만큼 영화 속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두 분의 인터뷰 등 취재 요청이 쇄도하고 있고, 심지어는 무작정 찾아가 사진을 들이대는 취재진도 있었다. 모두 다 깊은 관심이라 감사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상을 지켜준다는 것이 감독님과 제작진의 뜻"이라며 "이미 할머니는
수 차례 걸려오는 협박, 장난 전화에 겁에 질려 계시고, 할아버지 역시 무턱대고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크게 노여워하고
계신다"고 '워낭소리' 흥행에 따른 부작용을 설명했다.
인디스토리 측은 또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모든 언론, 방송의 취재 요청을 응해 드릴 수 없다"며 "두 분의 삶을 충실히
지켜드리는 것이 이충렬 감독님은 물론이고 제작사, 배급사, 홍보사의 입장"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예전에도 일반인이 방송이나 영화에 소개된 이후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TV 다큐멘터리로 유명해진 뒤 CF 촬영까지 했던 산골소녀 영자, 영화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 '맨발의 기봉이'의 실제 주인공
엄기봉씨 등이 유명세를 탄 뒤 평온한 삶이 침해받고 고통받았다.
'워낭소리' 관계자 역시 "이전에도 일반인이 방송에 소개된 뒤 달콤한 유명세가 무색하게 일상이 파괴되고 훼손된 경우들이
있었다. 다시는 일어 나지 말아야 할 일임엔 모두 동의하시리라 믿는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출처 : 마이데일리 = 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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